아쉬운 「남도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남도에는 남도 특유의 노랫가락이 있다. 또 이 시대에도 멎지 않는 한이 있다.
한과 설움이 묻어나는 상여소리마저 훌륭한 노랫가락으로 승화시키는 남도사람들은 분명 끼와 기질과 멋을 타고났다고도 볼 수 있다.
서로 만나 흥겨워 무작정 즐기고 아낙은 아낙대로 무명옷깃에 땀 내음을 풍기며 들일하는 자리에서 들노래를 불렀고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추며 한을 흥얼거렸다. 저녁마다 심지를 돋우며 물레 젓던 우리 할머니들의 창호지에 비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인가.
논에서 김을 매면서도 노래가 있었고 산에 나무하러 가며 지겟발에 장단맞춘 그 가락과 지게에 참꽃정도 꽂는 멋은 남도인의 기질을 잘 나타내는 표본이리라.
삼면이 해안으로 둘러 있기에 뱃노래가 있었고 욕마저 노래처럼 정겨운 남도인 들이다.
그러기에 남녘에는 빛난 얼굴들이 있었다.
강진에서 초당을 짓고 『목민심서』를 썼던 다산 정약용, 담양에서 『성산별곡』과 『사미인곡』을 지었던 송강정철, 해남에서『 산중신곡』,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를 노래했던 고산 윤선도,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며 대흥사 일지암에서 다도를 배워 남화를 뿌려 내린 소치 허련, 그의 손자 남농 허건 등.
현대시로는 광산에 박용철의 『나두야 간다』가 있고, 강진 모란 골에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해남에 이동주의 『강강술래』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가와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시대 욕과 한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남도예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많은 현대사를 거치며 욕은 욕대로, 한은 한대로, 노래는 노래대로만 제각각 남은 느낌이다.
어쭙지않은 이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찬란한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나.
옷깃을 새롭게 여미고 출발점에 서서 자신들을 돌아보는 여유도 가져야겠다.
노래와 사람과 빛난 얼굴들 속에서 우리 혈관으로 뜨겁게 흐르는 맥박은 뛰고 있는데 계속 시대에 대한 증오만으로, 혹은 침묵만으로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은가. 【명기환<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