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요란한 「금융특검」/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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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논리에 가장 철저해야 하는 금융부문에 행정만능 또는 규제제일주의가 자꾸 확산되고 있다. 규제로 될 일이 있고 안될 일이 따로 있는데 이것 저것 가리지 않는 식이다.
은행돈이 선거판으로 흘러드는 것을 차단하겠다며 실시하는 금융당국의 잦은 특검을 보자. 은행감독원은 지난달 하순 전금융기관에 대해 대대적인 특검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전혀 보잘 것 없었다. 감독원은 최근 『기업대출금이 정치자금화한 사례는 단 한건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특검결과를 발표했다.
여신금지업종에 대한 대출이나,은행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사례 몇건을 적발하는 「실적」을 올렸다지만 그 규모가 워낙 보잘 것 없어 금액도 공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또 다음달 첫째주에 2차특검을 한다고 야단이다.
현실적으로 정치판으로 흘러드는 돈의 상당부분이 기업에서 나온 것이고 그중에는 은행대출금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당국이 이같은 자금유용을 찾아내겠다고 특검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꼬리표가 없다」는 돈의 행방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따라서 이런 일은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추진하는 것이 일의 성과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다.
재무부와 한은은 구체적인 성과보다도 검사자체에 많은 비중을 두고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다시말해 이번 총선이 돈선거가 되지않도록 하기위해 정부도 가만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양 요란스레 일을 벌이는 것이다.
검사를 받은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도 『선거자금에 관한한 정부가 이번에 별소득이 없을줄 알면서도 구색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꼬집고 있다.
금융자율화를 외치면서도 은행임원인사가 여전히 정부나 권력자들의 손안에 있고 금리자유화에 착수했으면서도 금리결정과정에는 유·무형의 「간섭」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행정만능주의의 한 표본이다.
정부의 활동엔 국민들의 눈이 따라가게 마련이며 정치의 계절엔 특히 그렇다. 이면에 감추어진 「다른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거나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정책은 곧 들통날 수 밖에 없다. 경제문제에 관한한 여건이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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