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낙방이 인생 실패는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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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친애하는 박군에게.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가. 오늘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자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해서라네.』
이렇게 시작되는 경남 거창군 샛별 중학교 교장 전성은씨의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대입 시험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
전씨는 이 격려 편지에서 『대학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가려 하고, 무엇을 배워 어떻게 누구를 위해 살려 하는가』고 묻고 『나는 과연 학문을 할만한 사람이며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살아갈 능력이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솔직하고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YMCA가 입시에 실패했거나 사회로 진출해야만 하는 청소년을 격려하기 위해 펴낸「격려의 책과 녹음 테이프」가 진학과 진로 문제에 관한 각계의 글, 역경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수기, 교훈이 담긴 만화·동화·노래 등 알찬 내용으로 꾸며져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88년부터 매년 수험 실패 학생 격려 사업을 벌여온 서울 YMCA는 올해 책은 총2만 부를 종전의 20쪽에서 48쪽으로 늘려 발행했고 테이프는 1만개를 만들었다. 18일부터 28일까지는 특별 상담도 한다 (서울 YMCA 영등포지회·종로본회).
금년의 경우 14만9천여 명의 청소년이 입시와 무관한 사회 진출을, 55만6천여명의 청소년이 대입 실패에 따른 좌절을 맛본다.
서울 잠신고 박현규 교사는 격려의 글을 통해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실재 인물·본명 장지락)이 15세의 어린 나이로 만주·중국 대륙에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던 것을 소개하고 『그 나이 또래인 요즘의 청소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이 글에서 청소년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말고 자신의 진로를 과감히 선택할 것, 희망을 갖고 미래를 결정할 것,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 것 등을 당부했다.
한편 상고를 나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정은옥씨 (25·여)는 『처음에는 학력 차별이 의외로 심해 대입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직장 안에서의 클럽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학벌 이외에 추구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대학이란 나에게는 하나의 환상이거나 간판에 불과할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 YMCA (종로 본회 (732)8291∼8, 영등포지회 (624)5720 등)는 이 책과 테이프를 원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이달 말까지 무료로 배포한다. <석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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