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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아열대] ② 바다사막화(갯녹음)로 어장 초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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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지금 전 세계는 기상이변으로 온통 몸살이다. 대부분의 학자는 지구 온난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 결과 한반도는 아열대 지대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과연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 땅 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열대 현장을 추적했다.


2. 바다사막화(갯녹음)로 어장 초토화
-통영·거제시, 해남군과 서해안 일대…겨울잠 박차고 일찍 나온 꽃게”

“탁도가 높아서 가시거리가 매우 짧습니다. 위험하지 않은 곳까지만 안내하겠습니다.”

지난 3월10일 낮 1시30분, 경남 통영시 매물도 앞바다. 잠수복을 갖춰 입고 수면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구 온난화가 해수면이 아닌 바다 밑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몸이 수면 아래로 잠길수록 어두움만 더해갈 뿐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3분쯤 지났을까,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서서히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심 10m.

바닥은 뜻밖에 텅 비어 있었다. 이른바 바다사막. 갯녹음(백화현상·whitening event)이라고 불리는 상태였다. 육지에 빗대자면 초목이 사라진 사막처럼 바다가 황폐해지는 현상이다.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 처참한 풍경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의 징후 중 하나로 추정되는 갯녹음 현상이 지금 매물도 앞바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석회암처럼 보이는 바다 밑바닥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러자 바위 표면에 붙어있던 하얀 가루가 부유하기 시작했다. 희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바닥은 온통 이런 흰 가루로 덮여 있었다. 부유물이 사그라지자 해조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유일하게 눈에 띈 이 해조류의 이름은 곰피.

하지만 이 곰피는 원래의 곰피와는 생김새가 달랐다. 기형적으로 대형화한 곰피가 군데군데 자라 있었다. 미역처럼 생긴 거대한 곰피 군집이 제 몸을 가누기 힘든 듯 해류를 따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사체처럼 떠다니는 몇 몇 곰피는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다년생인 곰피의 수명은 5년 정도. 그러나 갯녹음 현상이 나타나면서 2~3년 정도로 짧아졌다고 한다. 입수하기 전 조사에 동행한 경상대 해양생명과학부 연구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곰피는 바다를 정화하는 착한(?) 해조류다. 하지만 이곳 매물도 앞바다는 오염이 심한 데다 해수온 상승으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했다.

수심이 조금 깊은 곳으로 다가가려 하자 함께 입수한 경상대 연구팀 소속 연구원이 주먹을 쥐어 보인다. ‘더 이상은 다가가지 말라’는 약속된 수신호였다.

경상대 해양생명과학부 김남길 교수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제주도 연안은 물론 남해안과 동해안의 양양 앞바다까지 온통 갯녹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해수온의 1℃ 상승은 육상에서 10℃ 이상의 변화에 필적하는 위력이 있습니다. 해수온이 올라가고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해조류의 착생이나 발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생태계 질서가 붕괴하는 것이죠.”

이런 갯녹음으로 피해의 직격타를 맞은 것은 소라·전복 등의 어패류. 논밭과 다름없는 바다를 일궈 살아가는 어민들이 이 일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바다사막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갯녹음은 비단 국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갯녹음이 확산일로에 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가 말 그대로 전 지구적 문제이듯,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셈이었다.

온난화로 남해안 김 양식도 내리막길

김남길 교수는 남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열대 징후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동해안에 가 보니 어종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남해는 어떻나?
“어종의 변화는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아열대성 해조류가 제주도 연안 등 남해안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증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종이 있나?
“비단망사가 대표적이다. 작아서 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지만, 비단망사는 그 종도 다양하다. 현미경으로 보면 꽃이 핀 것과 같은 그림이 연출되는 종도 있다.”

김 교수는 현미경으로 확대한 비단망사 사진을 보여주었다. 제주비단망사라는 이름의 종은 작은 살구꽃처럼 앙증맞고 예뻐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아열대화의 증거라고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것이 때로는 오히려 더 무섭고 위험한 것일 경우가 많지 않던가?

- 또 다른 사례는 없나?
“남해안의 김 양식의 경우 주도권이 서해안 쪽으로 서북상 중이다. 물론 여전히 김 양식은 남해안이 중심이기는 하나 그 추세가 점점 내리막을 걷고 있다.”

- 그것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라는 말인가?
“크게 봐서 그렇다. 고수온 현상이 계속되면 김이 씨앗(포자)을 퍼뜨리는 것이 늦어진다. 또 고수온은 김 자체를 녹게 하고, 붉은 반점이 생기는 갯병을 유발한다.”

▶강원도 횡계의 황태덕장에 명태가 가득히 건조되고 있어야 할 건조대가 썰렁하다.

매물도 앞바다에서의 갯녹음 현장 확인이 모두 끝난 시각은 오후 3시께. 통영항으로 이동해 주민 몇 명을 만나 분위기를 살폈다. 새벽부터 전복 양식장에 나갔다 왔다는 강민준(48) 씨.

“최근 이쪽 연안에서는 바다낚시도 잘 안 된다. 낚아봤자 폐그물만 올라온다. 바닷속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불가사리까지 씨가 말랐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연안 수온이 상승하면서 새로운 생태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바다생물의 씨가 마르고 있었던 것이다. ‘충무(통영의 옛 이름)에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한때는 호황을 누리던 이들 양식업이 이제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주변에서 통발을 손질하던 어민 김창열(55) 씨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김씨에게 어획량이 어떤지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금 저기 보이는 배들이 다 뭘로 보여요? 저게 다 감축당한 배예요.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고 사들이는 거죠. 이제 조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됐지 뭐….”

연안의 어족자원이 고갈될 지경에 이르자 정부에서 조업선의 수를 통제하고 있었다. 웅크린 김씨의 어깨 너머로 여러 척의 배가 바닷바람에 흔들려 삐걱거리며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해안은 또 어떨까? 하지만 파랑주의보 등 연이은 기상 악화로 모든 배가 통제된 상황. 인천 영종도에 소
재한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연인자 어업자원팀장 외 박사 네 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 서해안에서 지구 온난화의 징후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없나?
“서해 연안의 경우, 연간 온도차가 심한 곳은 30℃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계절에 따른 차이가 크다. 또 동·남해에 비해 수심이 낮고 저층냉수(p.288 참고)가 흐르는 데다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가 흘러든다. 그래서 서해에서는 지구 온난화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특이 현상은 없다.”

- 주꾸미 등의 조업 시기가 빨라졌다고 들었는데….
“서해 수온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것은 겨울철이다. 하지만 지난 겨울은 춥지 않았다. 그래서 어기(漁期: 고기를 잡는 시기)가 예년에 비해 빨라진 측면이 있다.”

- 주꾸미 말고 다른 어종 중에서 조업시기가 빨라진 것은 없나?
“지난 주(3월 초)부터 연평도에서 꽃게잡이 어망을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조사관을 파견한 상태다. 지금은 꽃게가 잠을 자야 하는 시기다. 3월 중하순에 어망을 치는 것이 정상이다.”

겨울잠을 자야 할 꽃게가 벌써 일어났다? 해수온 상승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겨울 실종! 주꾸미 조업도 빨라졌다

이제 봄이다. 봄이 되면 서해안에는 수많은 어종들로 넘쳐난다. 다양한 어종이 서해안을 헤집고 다닐 때 지구 온난화의 좀 더 명확한 징후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김상진_월간중앙 기자[kine3@joongang.co.kr]
이원형_월간중앙 인턴기자[exodus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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