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설명서|부작용 고려 한번씩 읽어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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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용카드 신청서의 뒷면을 보면 깨알같은 글씨로 카드이용 조건이 기재되어 있다. 자동차보험에 들었을 때도 소위 보험약관이라는 깨알같이 인쇄된 문서가 따라온다. 과거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카드 이용자나 보험가입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건이나 약관을 잘 읽어보고 또 그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약을 체결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사실 필자부터도 아직 한번도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다. 읽기가 귀찮은 탓도 있겠지만 읽어도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으레 잘돼있겠지 하고 자위하면서 휴지통에 넣어버린다.
그러나 전문가에 따르면 그 조건 또는 약관상에 불공정한 면이 있고 그런 불공정한 내용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용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약을 복용할 때의 주의사항도 마찬가지다.
알약을 한두 알씩 사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어지간한 포장크기의 약을 구입할 때는 약품설명서가 반드시 따라온다. 약을 사용할 때 설명서를 잘 읽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항상 의문이다.
그러나 보험약관과 마찬가지로 약을 복용한 사람은 약을 복용하기 전에 설명서를 충분히 읽고 주의해야 한다는 의무를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물론 전문가가 그 약을 복용하도록 권유한 경우에는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대비해야 할 의무가 전문가에게 돌아갈 것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병원에서 고혈압치료를 받아오던 환자가 갑작스런 일 때문에 병원에 오지 못해 근처 약국에서 혈압강하 제를 구입하고 그 안에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니 붉은 색 활자로 인쇄되어 있는 부작용의 내용이 너무 어마어마해 놀라 병원으로 뛰어온 적이 있었다. 진료하는 의사가 잘 대비해 투약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오랫동안 설득한 후에야 그 환자는 납득했다.
약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감기 약 또는 소화제 몇 알 먹는 것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의식해야 하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 크게 주의하지 않아도 별일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약품설명서를 한번씩은 꼭 읽어보자. <서정돈 교수(서울대 의대·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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