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경제정책이 아쉽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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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적 난제들이 첩첩이 쌓여가는 가운데 이제는 해결에 대한 국민적 자신감의 기반마저 동요되는 듯한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감돌고 있다. 고임금­고물가의 악순환을 차단하고 국제수지를 개선시키며 기술개발의 활성화로 산업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는 일들이 아무래도 어렵겠구나 하는 회의와 좌절감이 더 두텁게 형성되면 난국타개의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남덕우 전총리가 12일 경총연설에서 내놓은 종합경제진단과 경제난 타개방안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있다.
경제난을 초래하게 된 원인의 진단에서 그는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당리당략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의 행태,졸부들의 사치풍조,정부의 서투른 경제운용,경영환경의 급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기업의 실책 등을 지적했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 여러차례 논의돼온 것들이기는 하지만 전직총리가 『난국 극복에 도움이 될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없었던 점』을 지적하고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정치적 편의에 종속되었음』을 비판한 대목은 다시 한번 음미해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특히 정부가 꼭 해야할 일이라고 그가 강조한 항목들에 대해서는 정부당국이 당장 정책에 반영해야할 부분이 적지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법이 따로 있는데도 일관성과 공정성을 결여한 행정조치로 기업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기업의 창조적 혁신노력을 위축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은 금년의 정부시책에서도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다.
총액기준 5%이상의 임금인상 대기업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세무조사를 면제해 준다는 임금억제 정책이 하나의 단적인 실례다. 세무조사는 그것대로의 목적을 지닌 국가권력의 행사인 만큼 여기 저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단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6공정부 출범이후 수없이 지탄받아왔고 남 전총리의 연설에서 다시 지적된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이로 인한 국민의 정책불신을 불식하는데 있어 선거전후의 경제정책이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닌다. 정부가 일단 금년의 경제운용기조를 성장률의 하향조정을 통한 긴축과 안정으로 삼은 이상 앞으로의 모든 정책수단들은 이 기조에서 절대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예컨대 예산집행과정에서 선거를 의식한 인기주의의 습성이 되살아난다면 정책불신은 회복불능의 응어리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사회분위기가 해이해지기 쉬운 때일수록 오히려 긴축의 고삐는 더욱 죄어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런 노력을 아무리 강화해도 선거의 소용돌이속에 묻혀 정부시책의 효과가 상쇄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용으로,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더이상 낭비할 경제적 자원의 여력이 우리에게는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 전총리가 말한 『경제에 대한 정치의 걸림돌』을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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