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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어 일본서도 대한민국 young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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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도쿄대 물리공학과에는 물리학 매니어들만 모입니다. 그 친구들의 열정이 제겐 큰 자극이 됐어요."

일본 도쿄대를 수석 졸업하고 총장대상을 받은 채은미(24.사진)씨. 그는 물리학에 미친 '오타쿠(매니어층을 일컫는 말)' 학생들과의 경쟁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일본 대학이 한국처럼 취직하려고 토익 시험을 보러 다니는 분위기였다면 나도 열심히 공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갈수록 일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채씨는 5일 일본 도쿄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수석 입학했다. 외국인으로는 최초다. 4년 전에도 그는 도쿄대 이공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었다.

채씨는 서울 명덕외고 3학년이던 2001년 12월 한.일 공동 이공계학부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다. 물리학자의 꿈을 안고 외고 교육과정에 없는 수학.과학 심화과정을 혼자 공부한 것이 큰 힘이 됐다.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자연계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도 합격했다.

채씨는 국내 두 대학을 모두 포기하고 일본행을 택했다. 외동딸을 가까이 두고 싶었던 아버지 채종덕(54)씨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적 명문인 도쿄대에 가야 한다"는 채씨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학부 4년이 그냥 지나갈 것 같았던 채씨는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성과는 그대로 나타났다. 유학 첫해에 일본어 강의를 듣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이공계 학술용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덕이었다. 그러나 1학년 때부터 빡빡한 강의 시간표가 채씨를 힘들게 했다. 졸업 논문을 쓰는 4학년을 제외하고는 3학년 때까지 고등학생들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종일 수업을 들었다.

채씨는 "그때그때 복습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공부량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학의 원리를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엄청난 공부를 소화한 비결을 설명했다.

'보스 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로 한 4학년 때는 대학원생의 지도에 따라 실험하고 영어 논문을 읽고 공부하느라 연구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논문을 내기 두 달여 전부터는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연구실에서 나왔다. 채씨는 "학부생 대부분이 대학원에 진학할 정도로 물리학에 뜻이 있는 학생들만 모였기 때문에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오후 11시마다 지도교수님이 꼭 연구실에 들러 지도해 주는 데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공들여 준비한 채씨의 졸업논문은 도쿄대 총장대상 시상식에서 "고체분광학 분야에서 40여 년간의 현안에 대한 중요한 학문적 성과"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의 도쿄대 물리공학과 4년간의 성적을 우리나라 학점으로 환산하면 4.0 만점에 3.9 이상이다.

채씨가 밤새워 책만 들여다본 책벌레는 아니다. 고3 때나 지금이나 밤 12시 전에는 잠을 잔다. 그는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비법"이라고 소개했다. 스트레스는 추리소설과 피아노 연주로 풀고, 도쿄대 영어연극 동아리에서도 배우로 활동하면서 일본인 친구들 사귀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대학원에 다니게 된 채씨는 "물리학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 돌아가 이공계 기피 현상을 깨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 도쿄대 총장대상=도쿄대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3월과 10월에 학업.과외활동.각종 사회활동.대학 간 국제교류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았거나 학교의 명예를 빛낸 재학생에게 총장상을 표창하고 있다. 총장대상은 매년 총장상 수상자 중 1~2명에게만 주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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