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관철 위해 초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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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재산세 과표결정권을 중앙 정부로 이관하겠다'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서울지역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조세 저항 분위기가 거세게 일고 있는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실제 지방세법을 개정하게 될지, 아니면 일부 지자체를 겨냥한 엄포용에 그칠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이 정부는 출범하면서 지방분권의 핵심으로 지방 재정 자립을 강조해 왔다. 중앙 정부에서 배정해 주는 교부세.양여금 등에 의존해서는 자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중앙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주민자치를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방소비세 신설 등을 통해 지자체 스스로 살림살이에 필요한 재원을 자율적으로 마련해 조달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지방분권 로드맵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또 다른 주요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부동산 투기에 대한 억제책으로 재산세를 행자부가 지난 3일 내놓은 수준 정도로는 조정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주민들의 조세 저항을 명분으로 한 자치단체장의 반발이 너무 거세 재산세법을 개정하려다 보니 지방분권의 근본을 훼손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대로 지방세법에 대한 개정이 추진되면 지방분권의 취지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에 행자부 관계자들은 "이달 말까지 지자체들을 적극 설득해 재산세 인상안의 수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고민의 일단을 내비치고 있다. 또 "주민들이 조세 저항을 일으킬 수준이 아닌데 선출직 단체장들이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이라는 말을 흘리고 있다. 여론을 통해 지자체의 반발 움직임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권의 내년도 재산세가 평균 2배가량 인상된다지만 강북이나 지방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란 점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국세청 기준시가로 7억4천만원인 강남지역 50평형 아파트의 경우 올해 12만6천원에서 92만6천원으로 인상되지만 이는 기준시가 3억6천6백만원인 강북지역(77평형)보다 오히려 16만1천원 적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또 기준시가 4억원으로 동일한 아파트의 경우 서울 강남 재건축(15평형)은 2만1천원에서 4만4천원으로 2배 정도 인상되지만 비슷한 가격의 수도권 77평형 아파트(80만5천원)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격차가 56배에서 20배로 좁혀졌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은 행자부의 이 같은 움직임이 지방자치의 본질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조남호(趙南浩)서초구청장은 "과표 권고안을 거부하겠다는 게 아니고 지역 사정에 맞게 세율을 조정하려는 것"이라며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행정수도까지 이전하려는 정부가 재산세 과표 결정권을 회수해 가려는 것은 '행정 쿠데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방세법을 개정할지는 지자체별로 입장이 정리되는 이달 20일께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이기원.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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