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보호하자"|김유신<부산대교수·과학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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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환경보호다. 즉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보존이다. 만약 지구상에 인간 외에 다른 생물만 살고 있다면 환경오염·환경파괴라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여기에 대해서는『아니오』라고 할 것이다.
자연계에는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기능이 있어서 여러 요인에 의해 생태계에 부분적인 파괴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해 균형을 이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인간이 갖고 있는 지적능력, 그 중에서도 과학과 기술개발의 능력은 고도로 발달했지만 만일 과학과 기술을 사려 깊은 통제 없이 무절제하게 사용한다면 자연은 쉽게 오염되고 얼마 안가 인간은 물론 다른 생물조차 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할 수 있다. 오존층의 파괴, 전국에 내리는 산성비, 페놀에 의한 낙동강 오염사건 등은 이러한 가능성을 입증하는 좋은 예다.
그렇다면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본성인가, 아니면 우연적인 이 시대 과학기술의 특징인가. 과학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과학과 기술이 지니는 특수성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현대과학의 그릇된 자연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임이 곧 드러난다. 고대그리스 과학은 자연을 신적인 것이고, 유기체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과학탐구를 자연에 활동하는 신적인 속성을 드러내고 자연의 본질을 밝히는 고귀한 작업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연을 변형시켜 실험하고 지배하려는 현대과학의 자세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술이란 것도 자연과는 경쟁할 수 없는 것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그리스과학과는 달리 자연을 오로지 물질과 물질의 운동으로 구성되는 기계와 같은 것으로 바라본다. 더 이상 자연의 법칙은 영원한 신적인 속성이 아니며,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법칙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연관 아래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자연을 돌보고 가꾸기 보다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취급해 착취와 이용만 할뿐이다. 우리는 새로운 자연관으로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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