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체질강화 북돋워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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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들어 한달동안의 무역적자가 월별실적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 한달의 수출입 증감에 영향을 준 계절적·일시적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19억달러의 무역적자는 우리 경제규모에 비추어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런 추세가 연중 내내 계속될리는 없을 것이다. 향후 2∼3개월간의 수입을 예고해 주는 수입승인서 발급실적이 최근 급격히 줄고 있는 반면 수출선행지표인 신용장내도액이 꾸준히 늘고 있어 얼마간의 무수역지 개선이 예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이같은 단기적인 기복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역수지의 개선을 뒷받침할 산업경쟁력의 회복이 과연 진전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89년부터 3년째 빠른 걸음으로 악화돼온 무역수지가 올해부터 개선의 방향으로 반전,흑자전환은 어렵겠지만 적자폭의 축소만이라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무역수지에 대한 관심의 핵을 이룬다.
수출을 포기하는 기업의 수가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는 바로 이점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무역업신청마감일인 지난 연말까지 새해에도 무역업을 계속하겠다고 무역협회에 신청한 기업이 약 3만개의 대상기업중 4분의 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88년만해도 5%에 못미치던 수출포기 업체수의 비율이 해마다 현저하게 높아지다가 이제는 25%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수출을 직접 담당하던 기업이 무더기로 수출에서 손을 떼기로 한 사실에서 우리는 한국의 수출이 벼랑에 성큼 다가섰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생생한 증거를 발견한다. 고금리·고임금 등으로 수출의 채산성이 나빠지고 잦은 노사분규에 시달리면서 경쟁국들의 추격에 쫓기던 끝에 마침내 수출의욕마저 상실하게 되는 과정의 반복이 곧 수출포기 기업의 급증으로 귀착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거꾸로 돌려놓는 일과 무역수지의 악화를 역전시키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이것을 빼놓고 우리 경제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다급해진 정부가 수출금융지원을 늘리는등 오래전에 폐기했던 예방책들을 새로 동원하기로 했다지만 풀이 죽은 기업들을 그 정도의 유인책으로 수출전선에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비단 수출시장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조차 수입품과의 경쟁이 점점 힘겨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해결의 관건이 산업경쟁력의 전반적인 강화라는 잘 알려진 과제에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벅찬 과제를 수행할 주체는 기업이다. 개개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작업들을 기업내부에서 근로자와 경영진들의 손으로 추진하는 길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한 나라의 경제력쇠퇴가 기업경영난­산업부실화­경제력쇠퇴 순으로 이어짐을 생각할때 그 출발점에 위치한 기업자체의 체질강화 노력이야말로 국민경제의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실감하게 된다.
정부도 미시적인 지원수단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의 운용면에서 기업의 체질강화를 북돋우는 효과에 대해 더욱 심도있는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채산성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변수들을 다루는데 한층 주도면밀해져야 함은 물론이고 기업과 정치,기업과 정부,기업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기업 억압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에 있어서도 정부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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