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의지 안보이는 여야공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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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의 질적변화와 물갈이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는 민자·민주당의 공천내용이 일단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현역의원의 교체폭이 역대 어느 총선때보다도 좁고,새로 들어간 사람들도 이른바 참신성과는 거리가 먼 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여당의 경우,노태우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혔고 김영삼 대표가 여러번 뒷받침했던 참신성·도덕성이란 공천기준은 실종된 느낌이다. 오직 당선가능성이란 한가지 잣대가 적용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나마도 현역의원의 기득권수호와 계파나눠먹기에 치중해 과연 균형이 유지됐는지 의문이 간다.
물론 민자당이 이같은 결과를 미리 상정해 놓고 공연스레 현란한 공천기준을 내세워 국민을 속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계파보스들의 기본인식이 처음부터 현실안주를 겨냥했다고 믿고싶지 않으며,그들 나름의 고충과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후하게 봐주더라도 민자당이 주장하는 정치경륜·호남권도전·도덕성·지역주민 신망도·개혁의지의 반영이 납득할만한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처럼 목표와 결과가 어긋난데는 여러가지 이유와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쓸만한 사람은 정계진출을 기피하고,접근해오는 사람은 정치쇄신에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 정치혐오풍토에서 높은 기준에 합당한 인물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시원찮은 공천내용을 정치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우리가 보기엔 공천의 원칙이 흩어지고 모양이 일그러진 가장 큰 원인은 정치지도자 또는 정치인들의 자기몫 챙기기에 연유했다고 본다. 민자당은 이를 계파이익의 민주적 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국민의 눈에는 각계파가 처음부터 쇄신과 새인물 찾기보다 총선후를 겨냥한 힘겨루기에 진력한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싶다.
그 결과 계파의 균형은 어느정도 유지되었을지 모른다. 비정상적으로 힘을 발휘했던 월계수회가 위축되고,여권의 본포인 민정계가 지역·인맥에 따라 세력분화 내지 조정의 과정을 겪는 듯한 조짐도 발견된다.
연줄과 계파지분에 의해 공천의 명분과 원칙이 왜곡되기는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표가 누차 호기있게 강조한 민주당의 물갈이폭은 예상을 훨씬 밑돌고 말았다. 이런 면모를 가지고 민주당이 지역성을 극복하고 수권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할때 과연 공감대가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결국 민자·민주당의 이같은 공천내용은 새 인물을 학수고대하고,유능한 인재의 정계진출을 희망해온 유권자들을 곤혹스럽게 할 소지가 있다. 그로 인해 투표참여가 영향받고 정치불신이 고조된다면 우리의 의회주의와 민주화 도정은 향기롭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탈락자들의 이합집산,권력의 탈락자에 대한 유·무형의 압력이 어떤 변조를 부를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이제 유권자들이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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