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비정상적 조짐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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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정치판에 이상한 조짐들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여당의 공천을 둘러싸고 정당밖의 힘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고,야당에서 조차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정치행태가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5공인사의 출마문제에 관해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소문도 들린다.
우리는 다가올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6공의 민주화의지를 마무리짓는 행사란 관점에서 최근의 모든 현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행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은 민주화로 인한 낭비와 부작용,경제실정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평가받고 있는 대목이 바로 민주화에 대한 그의 단심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민주화야말로 노대통령이 끝까지 지켜야할 덕목이며 여기에 훼손을 가하는 것은 그의 도덕성과 직결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는 곧 정치의 문민화,탈공작화를 의미하며 노대통령이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일정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6공이전에 정치가 보복의 대상이 되고,권력이 정치의 구도를 좌지우지하던 비정상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리고 또 그 결과가 떻게 되었는지도 목격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어느 개인에게 시비하려 들면 그 개인은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목숨 걸고 투쟁하는 사람 외에는 꺾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같은 권력행사는 정치를 비정학 할 뿐 아니라 권력자에게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민주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법치이며 권력이 제도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다. 법이 힘있는 자에 의해 악용되거나 남용되는 사례가 횡행한다면 아무리 민주화의 고운 얼굴로 치장하려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법에 정해져 있는 기관은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당하게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수년간 권력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왜 경원시 되었으며 민주화의 진행과 함께 자제의 모습을 보여온 이유를 냉정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권교체기에 권력의 힘이 전면에 부상되기를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확증이 없는 소문만으로 의혹을 믿거나 증폭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권력기관이 민자당의 공천에 직접 개입하거나 정치인들의 인위적인 교통정리에 힘을 발휘하는 인상은 주지 않았으면 한다.
컴컴한 약점이 있는 인사의 정치권진입은 막을 생각이라면 떳떳이 실정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 동기에서 개인적 약점을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 정치보복이란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영향받는 것은 국민정서로서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은 권력에 의해 진퇴가 정해져서는 안된다. 적격여부는 오로지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더욱이 타의에 의해 출마자체가 위협받거나 개인적 운신이 제약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납득되지 않는다.
정치가 규칙을 벗어나 보복과 탄압의 대상이 되는 악습은 6공에서 고리가 끊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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