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인기 없는 일' 안 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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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한나라당.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이 모두 부결된 것은 정치권이 국민연금제도에 칼을 대는 데 얼마나 소극적인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는 연금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올리고 소득 대체율(소득에 대비한 연금 지급 비율)을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당시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소득비례연금'의 국민연금 이원화 방안을 주장하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사실 한나라당 안은 '연금 사각지대 해소'라는 명분이 뚜렷한 데다 가입자 입장에서도 개정안보다 유리하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이다. 열린우리당은 "기초연금에 들어갈 연간 수십조원의 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이냐"며 한나라당 안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후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란 새로운 정치상황이 연출됐다.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원내 판도가 바뀐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형근.고경화 의원 등 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상임위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민노당 측과 물밑접촉을 벌였다. 그 결과 양당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노당은 원래 '한나라당의 소득비례연금에 소득 재분배 요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민노당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걸림돌이 제거됐다. 한나라당은 노인 표를 겨냥한 정치적 명분이, 민노당은 열린우리당과 구별되는 정책의 선명성이 각각 필요했기 때문에 17대 국회에서 보기 드문 '좌우합작'이 탄생한 것이다.

국회 내 정당 판도가 변한 뒤 첫 진검승부였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이날 표결을 앞두고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먼저 실시한 수정안 표결에선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 120명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통합신당모임.민생정치모임 등의 지지표를 전혀 얻지 못해 수정안은 부결됐다. 그러나 뒤이은 개정안 표결마저 23명이나 기권하면서 부결되자 본회의장은 술렁거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롯한 상당수 의원들이 '인기 없는 일'에 발을 뺀 것이다.

특히 통합신당모임(14명).민생정치모임(4명) 등 열린우리당 탈당 그룹이 친정의 방침에 반기를 들고 대거 기권한 게 치명타였다. 열린우리당으로선 국회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한 순간이었다.

국민연금법 개정을 주도한 유시민 복지장관에 대한 통합신당모임 의원들의 뿌리 깊은 반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최재성 대변인은 "통합신당모임 측의 천박한 자기 부정"이라고 성토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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