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리 벗어난 “특혜”시비/신발산업 합리화업종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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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특정지역 의식한 정치색채 강해/정부내서도 이견… 타업종과 형평 어긋나
신발산업 합리화업종 지정 및 합리화 계획안이 21일 산업연구원에서 열린 공업발전 심의회에서 의결됨으로써 24일 열릴 예정인 산업정책 심의회만 통과하면 정부 방침대로 2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공업발전 심의회에서는 신발산업의 합리화업종 지정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었으나 2차연도인 내년부터는 정부의 예산을 확보,일반 금융자금이 아닌 낮은 금리의 공업발전 기금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달아 합리화 안건을 의결했다.
신발산업을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할 바에는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사실 이번 신발산업의 합리화업종 지정에 따른 정부의 지원내용은 어정쩡한 것이다.
우선 공업발전법에 따라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키로 했으면서도 연7% 금리의 공업발전기금이 아닌 일반자금으로 지원키로 한 것부터가 정부 스스로 합리화업종 지정의 특혜적 성격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신발업계는 당초 정부에 4천5백55억원의 합리화 자금을 요구했으나 상공부는 이를 2천7백억원으로 깎았으며 경제기획원은 관계부처간 협의과정에서 1천7백억원을 주장,결국 2천억원의 절충안이 마련됐다.
이같이 정부가 신발업계에 대한 지원에 인색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신발산업의 합리화 방안이 거론되는 과정에서 공업발전법에 따른 절차에 앞서 여야의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지원을 요청하는등 경제논리 보다는 지역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치논리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무부처인 상공부 내에서도 합리화업종 지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으며 경제기획원은 줄곳 반대의견을 가졌었다.
게다가 신발업계가 지난해 수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10여년간 충분히 호황을 누려왔기 때문에 서둘러 자금지원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업종과의 형평에 어긋나며 산업합리화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폐지론이 나올만큼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않는 특혜적 성격이 논란을 빚고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 86년 기계·조선·철강공업 육성법등 개별법을 현재의 공업발전법으로 흡수하면서 산업의 육성발전과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합리화 제도를 도입,자동차·직물·비료·선박용 디젤엔진 등 6개업종을 합리화 업종으로 처음 지정했으나 당시에도 이에 대한 반대의견이 적지않았었다.
특히 미국은 특정산업을 육성,수출을 유도하는 것은 세계 교역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주장,이의를 제기한바 있다.
이번 신발산업의 경우 산업피해 구제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과거 일본이 60년대에 자동차등 특정산업에 자원을 몰아줬던 경사식 산업육성전략 처럼 외국으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이유는 없겠으나 산업합리화 제도의 지나친 남발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86년 7월 이후 공업발전법에 따른 합리화업종 지정은 신발을 포함,9건에 이르고 있다.
이중 「합리화」기간이 계속중인 것은 직물산업(오는 6월 종료)뿐 이지만 앞으로 닥쳐올 격심한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어려운 업종이 나올때마다 정부에서 돈을 대줘야 한다면 합리화 제도의 취지가 빛바랠 우려가 없지않다.
게다가 신발업계는 그동안의 호황에도 불구,자기브랜드의 개발과 기술개발 노력을 등한히 했던게 사실이고 이번 합리화 계획에서도 낡은 시설의 개체 이외에는 부동산 매각 등의 눈에 보이는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의 지역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신발산업을 의식,업계와 정부 일각에서는 「YS지분」이라는 말까지 돌고있다.
신발산업에 대한 합리화 지정이 기정사실화 된만큼 신발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모아가야 겠지만 이번기회에 합리화 제도와 산업구조 조정정책의 줄기를 다시 잡아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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