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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본 적 없는 아프리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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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나도 따라 웃다가 문득 이거 웃을 얘기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 유학생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본인의 편견과 무지에 통렬한 일격을 가한 셈이었다. 나뭇잎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창대로 땅을 치며 춤추고 여자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슴을 드러내는 아프리카, 타잔과 제인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도대체 밀림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 '동물의 왕국' 말이다.

서양인들이 조선시대 유부녀의 드러난 젖가슴을 보고 미개인이라며 혀를 차던 게 불과 1세기 저편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들의 풀어헤친 젖가슴은 대 이을 자식을 낳았다는 자랑스러운 표식이었다. 그렇지 않은 여인네의 가슴은 그야말로 '담배씨만큼' 엿보기도 하늘의 별따기던, 엄격한 도덕사회였다.

100년 사이에 어느덧 우리에게도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배어들었다. 이주 노동자들, 특히 피부색 짙은 외국인이 겪는 차별에서 가해자로 변신한 피해자의 뒤틀린 이중성을 목격하게 된다. TV 광고에서는 '모잠비크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털을 자를 용기가 있으면 머리털이 빠지지 않는다는 전설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와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라는 부정적 요인도 가세한다. 영어가 공용어인 가나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이가 한국에서 영어 강사직을 얻으려 해도 학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이 영어를 가르친다면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국인 여자친구가 생기면 다른 한국인들이 불같이 화를 낸다(한건수 교수의 2003년 논문 '타자(他者) 만들기:한국 사회와 이주노동자의 재현'). 그래서 한국에 사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중에는 영어만 되면 차라리 "나는 미국인"이라고 말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앞에 앉은 한국인의 태도가 사뭇 달라진다는 것이다.

앞에서 논문을 인용한 강원대 한건수(문화인류학) 교수는 미국유학 중 박사논문을 준비하느라 1996년부터 1년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오케익보 지역에서 현장 조사를 했다. 연구를 원활히 진행하려면 먼저 지역 추장회의에 참석해 논문 주제를 설명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추장들은 이방인을 따뜻하게 환영했고, 자유롭게 조사하도록 허가해주었다. 그런데 이방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한 원로 추장이 "우리의 추장회의는 한국 국회와 다르다"고 말했다. "의견이 달라 때로는 심하게 논쟁도 하지만 몸싸움만은 절대 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국회의 몸싸움 장면을 과장을 섞어 흉내냈다. CNN 뉴스에서 보았다고 했다. 다른 추장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그 모습을 구경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점점 인종의 용광로로 바뀌어 갈 것이다.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주장도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출신 이주자를 시혜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그들에 대한 모독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이라 했다. 내가 싫은 짓은 남에게도 하지 않으면 된다.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수용시설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떼죽음당한 게 바로 지난달이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