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남게만 해주세요”(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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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소개비로 1천5백달러(한화 1백10만원)라는 큰돈을 들였어요. 추방되지 않고 한국에 남게 되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요.』
중국 복건성에 사는 중국인 임봉씨(33)는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아내(29)와 딸(7)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낯선 타국땅에서 조금만 더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경찰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3개월정도만 고생하면 목돈을 챙겨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부푼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취업을 알선해준 볼리비아 국적의 중국인 유연식씨(48)가 14일 불법취업 알선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면서 자신도 중국으로 추방될 처지여서 그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목돈을 벌어 가면 논밭·컬러TV·냉장고도 사고 예쁜 드레스를 딸에게 사주려 했는데….』
고교졸업후 잡화가게종업원으로 일하다 실직한뒤 중국정부로부터 분양받은 방 2칸짜리 집에 살며 정부로부터 월 1만5천원의 연금을 받아온 임씨가 이같은 꿈에 사로 잡힌 것은 지난해 8월초.
이웃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가 몇달만 고생을 하면 큰 돈을 벌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며 한국취업을 권유했다.
수소문 끝에 유씨를 통해 지난달 20일 경기도 안산공단내 한 금속도금업체에 용접공으로 취직해 일당 2만원을 받고 일하게 된 것.
임씨는 회사기숙사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4일씩의 야근도 마다하지 않은채 나날이 두둑해지는 호주머니를 보며 모든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지금 추방되면 소개비도 갚을 수 없어요. 설사 추방된다 하더라도 귀국하지 않고 사이판이라도 들어가 돈을 벌어야만해요.』
「체류기간 30일」이라고 쓰인 글씨를 손짓으로 가리키는 임씨의 빛바랜 여권에 쓰여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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