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치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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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태평양전쟁이 일어난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아시아 여러나라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같은 전쟁도발국가이면서도 독일은 전후 전쟁책임을 통감,전쟁피해국들에 정중한 사과와 보상을 했고,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부끄러운 역사를 깊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전쟁피해국들에 대한 보상과 사과에 인색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반성하는데 있어서도 여간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계속 물의를 빚었던 역사교과서 문제가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독일은 현재 2차대전의 전후보상문제를 둘러싸고 피해국들과 시비가 일고 있는 현안들이 거의 없다. 있다면 도피중인 나치 전범들을 체포하는 일만 남았을 뿐인데 그나마 이제는 대부분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거나,아니면 자연수명이 다된 상태라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도 피해국들과 크고 작은 전후보상문제를 완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있어 제소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우선 멀리 태국에서는 전쟁 당시 태국∼미얀마간 철도건설에 강제로 끌려갔던 25만명의 노무자 문제가 있고,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일본군에 끌려가 전사했거나 가족이 학살된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채 있다.
홍콩에서는 군표에 의해 강제로 재산을 잃은 사람들,파라오 제도와 괌도 같은데서는 유골수집과 보상금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은 일본군에 끌려간 20여만명 가운데 전사한 3만여명의 문제,중국은 약 4만명의 강제노동자 문제가 현안으로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우리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무려 2백만명이 넘는데 전쟁터와 광산·군수공장등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그 가운데 이른바 「종군위안부」문제는 가장 부끄러운 역사의 치부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까지 정신대를 『민간이 했다』고 발뺌해 왔는데 최근 공식문서가 발견됨으로써 다시 한번 역사앞에 부끄러운 꼴이 돼버렸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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