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에 대한 반성(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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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대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정주영씨의 공개발언을 접하고 우리는 우선 경악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무언가 우리사회가 막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치자금은 그 액수는 둘째치고 건네주고,받음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또 그것이 개도국사회에서 묵시적으로 양해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직접·간접으로 이권과 연결 된다든지,액수가 과대하다든지 하면 그것은 정치적으로,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밖에 없다.
정회장의 경우는 반대급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주었다』면서 정치자금이라는 표현을 써 혼돈을 주고 있다.
그 돈을 강요에 의해 주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우리는 아는 바 없다. 스스로 주었을지도 모르고 또 직·간접의 반대급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돈의 수수를 일방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이런 일은 아마 외국에서도 화제에 오를지 몰라 창피한 생각마저 든다.
정씨가 어떤 동기에서 어떤 목적으로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몇가지 문제점과 과제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첫째,역대에 걸쳐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람이 새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도덕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다. 법에 의하지 않은 정치자금 수수가 비난 받을 일이기 때문에 공개된 사실에 근거해 정씨가 스스로는 어떻게 비난을 감수하고,책임을 질 생각인지 의문이다.
둘째,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이 현존한다. 그들의 진상해명 노력이 있어야 한다. 6공들어 우리사회는 민주화와 함께 많은 분야에서 권위와 관행이 해체되는 과정을 밟아왔다. 5공때의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정치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도 이번 정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당사자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
셋째,이번 정회장발언을 계기로 정치자금에 대한 질서와 책임이 새로 정리되어야 한다. 정치자금은 가능한한 공개되어야 한다.
말썽은 항상 「검은돈」에서 생긴다. 주고 받는 쪽에서는 검은 돈일수록 좋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특혜가 끼어들게 되고 정경유착 이상의 정경부패가 생긴다.
인물·능력·정책때문에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만 가장 무서운 불신은 「검은돈」때문이다.
이번 정씨의 발언이 조리도 없고 동기도 의아스럽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대반성의 계기는 되어야한다.
정씨의 발언을 계기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폭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또 이 일로 해서 세상이 수근대고 시끄러워지는 것도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씨 발언의 파문은 단시일안에 명쾌하게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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