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조원 펀드 시장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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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펀드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04년 말 186조 원이던 설정 규모는 최근 243조 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2004년 말 8조 원에 불과하던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51조 원을 넘어섰다. 또 펀드오브펀드(재간접펀드)도 같은 기간 2조2000억 원에서 12조3000억 원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몇몇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투자자 선택 폭 좁아=은행.증권 등 펀드 판매사들이 지나치게 계열 자산운용사 상품 위주로 팔아 투자자의 선택 폭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7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설정액 50억 원 이상 국내 주식형 펀드 판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계열 운용사 상품의 판매 비중이 절반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은 특히 67개 판매 펀드 중 계열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펀드가 각 55개, 10개다. 전체 펀드 판매의 97%를 계열사 상품으로 채운 것이다. 또 최대 펀드 판매사인 국민은행은 46개 펀드 가운데 13개(28%)만이 계열사인 KB자산운용의 펀드였지만, KB운용의 경우 설정액 50억원 이상 국내 주식형 펀드(사모 펀드 포함, 자산운용협회 기준)는 15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국민은행도 계열 운용사 펀드는 거의 팔아주고 있는 셈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계열 판매사가 없는 중소 운용사들은 판매 채널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며 "펀드 보수의 절반 이상을 판매사가 챙기는 만큼 이들은 고객을 위해 다양한 펀드 판매 목록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기와 시류에 편승"=펀드오브펀드가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펀드 시장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펀드오브펀드는 주식이나 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대신 성과가 우수한 펀드에 재투자하는 펀드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27일 "펀드오브펀드의 핵심인 운용과 리서치는 대부분 해외 자문사 또는 해외 합작 계열사가 담당하고 있다"며 "국내 운용사는 해외 리서치 자료 번역, 판매사 등을 대상으로 한 영업 활동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운용보수(평균 0.7%) 대부분을 해외 자문사에 수수료(0.2~0.6%)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은 높은 수수료를 물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팀장은 또 "전세계 6만여 개에 이르는 펀드를 조합해 수많은 펀드오브펀드를 만들 수 있다"며 "이렇게 만들기 쉽다 보니 인기와 시류에 편승한 펀드가 양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3년 뒤에도 제대로 운용되는 펀드오브펀드가 몇 개나 될지 의문"이라며 "일단 만들어 놓기만 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결국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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