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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 종가음식 기행 ② 전남 영암 전주 최씨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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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45년 넘게 다복한 삶을 가꿔 온 최연창·최복순씨 부부. 전주 최씨 종가에는 이들 부부의 이름을 적은 문패 2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쿠켄 제공]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마을에는 전주 최씨 문성공파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종가가 있다. 550년 전 남원부사를 지냈던 최덕지가 터 잡은 이래 22대를 내려오면서 양자 없이 적(嫡)장자로만 이어 온 보기 드문 가문이다. 제사 음식을 형제들이 나눠 준비하는 400년 전통도 남다르다. 제사 음식 준비가 번거로워 맏며느리 자리를 꺼리는 세태에 귀감이 될 만하다.

호남의 영산 월출산이 한눈에 보이는 명당에 자리한 종가의 솟을대문에는 22대 종손 최연창(72)씨와 종부 최복순(69)씨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가 붙어 있다. 유교문화의 전통만 고수하는 게 아니라,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는 면모가 새로워 보였다. 자녀 교육장이었던 6칸의 서재와 4칸짜리 소박한 사랑채, 일자 형으로 앉혀진 안채가 넓은 터에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넉넉한 웃음으로 객을 반기는 종손과, 조상 제례와 종가 수호를 긍지로 여기는 종부는 현대식으로 고친 부엌에서 내림 음식을 즐거이 만들어줬다.

"2003년 봄 왕인(王仁) 벚꽃축제가 열렸을 때 다섯 가지 나물을 곁들인 낙지비빔밥과 소머리수육, 시래깃국으로 구경 온 사람들을 대접했어요. 영암군에서 우리 집 내림 음식을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칭찬해 고된 줄도 몰랐습니다."

세발낙지 비빔밥

종부에게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본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종갓집 살림하다 보니 워낙 분주해 그럴 짬이 나지 않더군요. 새댁 시절에는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들이 잡아다 줬습니다. 지금은 시장에서 사 오는데, 요즘은 세 마리에 1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값이 많이 올랐어요. 비빔밥에는 중간 크기 낙지 한 마리는 들어가야 씹히는 맛이 있거든요."

종종걸음으로 일하는 종부를 거들던 자상한 종손은 "세발낙지는 발이 가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요즘이 제철"이라고 말했다. "영양가가 높아 옛날 어르신들은 '말라빠진 소에게 세발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강한 힘을 내게 된다'고도 했지요. 어렸을 때 감기 몸살로 누워 있으면 어머니가 세발낙지에 찹쌀과 대추를 넣어 죽을 쒀 주셨습니다."

종가 옆에는 최덕지와 사위 신후경이 함께 세운 정자 '영보정(永保亭)'이 있다. 한석봉의 빼어난 글씨가 현판으로 걸린 정자에서는 양력 5월 5일 마을축제인 풍향제가 열린다. 고향 떠난 사람들도 이날만은 돌아와 줄다리기, 용마름 틀기, 씨름, 그네뛰기 등을 즐기면서 세발낙지 비빔밥 한 그릇으로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우거지 된장국

▶세발낙지 비빔밥 (재료 4인분)

.재료=밥 4공기, 중간 크기의 세발낙지 4마리, 숙주 150g, 표고버섯 150g, 취나물 150g, 시금치 150g, 무 150g, 달걀 4개, 다진 마늘 2큰술, 대파 1개, 참기름 2작은술, 왕소금 조금, 깨소금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고운 소금 조금, 고추장 조금.

ⓛ낙지는 내장을 없애고 소금물에 씻어 살짝 데친 후 5㎝ 길이로 썰어서 다진 마늘, 참기름, 소금으로 양념해 둔다. ②무는 5㎝ 길이로 곱게 채 썰어 고춧가루, 소금, 다진 파, 다진 마늘로 양념해 무채를 만든다. ③불린 표고버섯은 얇게 썰어 마늘과 소금으로 양념한 다음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아 둔다. ④시금치와 취나물은 다듬어 데친 다음 먹기 좋은 길이로 썰어 소금, 참기름, 깨소금, 다진 파, 다진 마늘을 넣어 무친다. ⑤데친 숙주나물도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 다진 파를 넣고 무친다. ⑥따끈한 밥을 그릇에 담고 가운데 달걀을 얹은 다음 준비한 나물과 낙지를 담아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 먹는다.

▶우거지 된장국 (4인분)

.재료=무청 200g, 멸치 끓인 물 6컵, 다진 마늘 1큰술, 굵은 파 1개, 된장 3큰술, 국간장 1작은술

①삶은 무청을 3㎝ 길이로 썬 다음 된장 1큰술, 다진 파, 다진 마늘과 국간장 1작은술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놓는다. ②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국물 6컵에 된장 2큰술을 풀고 한소끔 끓으면 무쳐둔 무청과 대파를 썰어 넣고 다시 한번 끓인다.

이연자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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