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창하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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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 창하오 9단

제10보(123~132)=창하오(常昊) 9단은 예전에도 약한 바둑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는 정상급이었으나 심정의 조율이 잘 되지 않았을 뿐이다. 유리한데도 겁쟁이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소년처럼 강하게 나가고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에는 주춤주춤 망설였다. 때마침 이창호 9단은 최강이었기에 10년에 걸쳐 연전연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창하오는 바닥까지 굴러 떨어지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오래 준비했고 드디어 이창호를 다시 만났다. 영원히 넘지 못할 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던 이창호….

123을 두면서 창하오는 약간 흥분한 듯 보였다. 위험은 모두 제거됐고 험난한 고비는 다 넘었다. 이젠 드디어 윤곽이 드러나려 한다. 이창호라는 장벽 너머 존재하는 꿈에 그리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상변 관계로 124의 후퇴는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흑은 이제 마음 놓고 상변을 돌파한다. 백은 130까지 살아갔으나 얻은 것은 거의 없다. 131도 당했다.

엷은 상변은 흑의 최후의 약점이었으나 이곳이 5 대 5로 마무리되면서 국면은 드디어 단순해졌다.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 다시 흙먼지를 일으켜야 했는데 백은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다. 집은 쉽게 헤아려진다. 흑은 반면 10집 정도를 앞섰다. 덤을 제하고 3집 반이지만 이렇게 단순해진 바둑은 한 집을 추격하는 데도 젖 먹던 힘을 쏟아야 한다. 3집 반을 추격하려면 지옥의 레이스에다 상대방 실수가 겹쳐지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 이제 역전 가능성은 10% 이하로 떨어졌다.

건너편 중국 검토진 속에서 창하오의 부인 장쉬안(張琁) 8단과 곱게 차려입은 창하오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고통의 시절 창하오를 격려했던 사람들. 그들의 꿈이 이제 막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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