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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5)|제87화 <서울야화>(2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경향신문을 나온뒤인 1947년 여름 어느날 서울대학 총장 윤일보박사가 나를 불렀다.
윤총장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번째로 취직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교감이었다.
나는 그 학교 영어·라틴어 강사로 총독부에서 영어를 폐지할 때까지 8년동안 근무했었다.
매일신보에 입사할때 월급이 적다고 신문사 지배인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시간강사 출강을 허락해주었으므로 나는 터놓고 영어강사 노릇을 할수 있었다.
의학전문은 아침 수업이 일찍 시작되므로 아침 두시간 강의를 끝내고 오전 10시까지 여유있게 신문사에 나갈수 있었다.
윤총장은 나와 친한 사이로 끊임없이 나의 교원취직을 알선해 주었다. 그날 용무는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 상과대학을 쇄신하게되어 동경상대를 나온 박용하가 학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어제 사신에게 인사하러 와 영어선생을 한사람 추천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나를 추천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었으니 내일 상과대학에 나가 학장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해서 나는 상과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그때 같이 들어간 사람이 김효록·김순식·육지수·조기선, 그리고 나를 합쳐 다섯사람이었다.
상과대학은 당시 가장 격렬한 좌익학생의 소굴이어서 국대안을 반대하여 날마다 데모를 하고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인기학장이 물러나고 우익측의 강경파로 이름난 박용하를 학장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박학장도 취임하자마자 격렬한 반대 데모를 만나 곤경을 치르고있었다.
우리들이 취임한지 얼마 안되어서 학생들이 학장·교수들과 학생들의 연석회의를 열자고 해 나가보았다. 선생들을 가운데 앉혀놓고 학생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서있는데 사방에서 국대안의 잘못을 성토하는 질문을 퍼부었다.
태도가 몹시 방자하고 선생을 범죄자 다루듯 하는 것이 괘씸해 견딜수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더니 어디를 마음대로 나가느냐며 못일어나게 하고 너희들은 미군정의 앞잡이니, 반역자니 하는 욕실을 퍼부었다.
이것이 당시 좌익학생들의 기질이었다. 좌익학생들은 서로 연락이 있어서 어느날 어느대학에서 무슨 성토대회가 있다고 하면 각 대학의 정예분자가 모두 모여 선생들을 여지없이 윽박지르고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욕설을 퍼부어서 선생들을 똥친 막대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날마다 학교에는 나가지만 교실에 학생이 없어서 강의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1주일에 강의를 한두번 하면 아주 성적이 좋은편이고 1학기 모두 합해 대여섯번하면 우수한 편이었다.
얼마 안 있어서 겨울방학이 되자 우리들은 자연히 다른 직장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몇사람은 고려대학으로 가고 나는 미국공보원의 미술과 고문으로 들어갔다. 미국공보원이란 미국문화를 선전하는 기관인데 거기 구원회라는 친구가 있어서 이 사람의 추천으로 포스터등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아트섹션」의 어드바이저가 되었다.
일이란 미술과의 과원들이 그려오는 그림의 영문 설명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
매우 한가롭고 흥미있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 덕에 서양의 유명한 그림들의 복사판을 많이 구경하였다. 콜건이라는 미술과장은 해박한 시식을 갖고 있어서 그에게 서양 그립에 대해 많이 배웠다.
콜건은 동양그림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한국그림올 보여주기 위해 전형필을 소개하고 성북동에 있는 그의 미술관에 데리고 가서 한국의 풍속화를 보여주었다.
혜원 신윤복의 한국풍속화에 콜건은 매우 매료된 것 같았다.
그는 몇번이고 「엑설런트(훌륭하다)」란 탄성을 질렀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공보원 사무실로 한떼의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들은 모두 좌익색채의 인물들로 평소 내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있던 사람들이었다.
『너, 미국놈의 종이 되어서 이게 무어냐. 썩 집어치우고 우리들과 같이 일을 하지 않을테냐….』
한 친구는 이렇게 호령하였다.
『여보게, 우리들과 같은 대열에 서지 그래.』
그들은 이렇게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들은 『에이 틀렸다. 아주 악질반동분자로구나.』 이렇게 단정짓고 화를 내며 『어서 가자』고 우르르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미국공보원에 있는동안 몇번 이런 일을 당하였다. 당시의 세태는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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