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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 종가음식 기행 ① 경북 영양 재령 이씨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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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재령 이씨 가문의 13대 종손 이돈씨와 부인 조귀분씨가 최초의 한글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안동 장씨의 유품을 살펴보고 있다. 배경사진은 경북 영양에 있는 재령 이씨 종택이다. 사진제공=쿠켄

이번 주부터 매주 수요일 '이연자의 종가음식기행'을 연재합니다.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이자 국립문화재연구소 전통음식조사자문위원인 이연자(59)씨가 전국의 종가를 발로 뛰며 취재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우리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맛깔스러운 음식입니다. 이씨는 그동안 '자연의 맛 우리 차요리' '명문종가를 찾아서' '명문종가 사람들' '종가의 제례와 음식'(공저) 등의 책을 낸 이 분야 전문가입니다. 음식마다 조리법을 곁들여 집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북 영양군 원리리에는 정부인 안동 장씨(1598~1680)가 쓴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의 산실이 지금도 남아 있다. 350여 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고택은 부인의 부군인 재령 이씨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종가다.

학자였던 이시명은 병자호란 때 임금이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수모를 겪게 되자 경북 영해의 본가에서 산간 벽지였던 이곳으로 옮겨와 은둔 처사로서 일생을 마쳤다. 종택은 다섯 칸의 소박한 사랑채와 요리책을 썼던 안채가 남아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고택에서 만난 장씨 부인의 13대 종부 조귀분(59)씨는 마치 장씨 부인을 연상시키는 단아한 모습이었다.

"장씨 부인은 국난을 맞아 어려웠던 시대에 몰락해 가는 가문을 일으키고 아들 일곱 명을 대학자로 키워낸 전설적인 분입니다. 할머니는 1999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신사임당 이후 여자로는 두 번째였습니다. 조선시대 여인으로서는 드물게 10세 때 지은 시와 그림 등 작품도 전해옵니다. '음식디미방'은 할머니가 평생 동안 만들었던 음식을 며느리에게 전수하기 위해 74세 때 쓰셨다고 합니다. 가양주 만드는 법을 비롯해 146가지 요리법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요즘엔 생경한 요리 재료들이 많다. 곰 발바닥, 멧돼지, 참새, 자라, 누런 개, 꿩 등이다. 당시는 가문의 체통을 지키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손님 접대를 위한 술 빚기. 술 종류가 자그마치 51가지나 된다. 이화주.사시주.칠일주.절주.하절주 등 계절감이 살아있는 술이 있는가 하면, 감향주.죽엽주.유화주.향온주 등 풍류가 느껴지는 술도 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제철이 아닌 푸성귀 보관법도 있다.

"생선을 말릴 때는 내장과 핏기를 말끔히 없애고 소금을 친 다음 널빤지 사이에 질러 두었다가 판판해지면 발에 널어 말린다. 이때 밑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쐬면 벌레가 꾀지 않는다"는 살림의 지혜도 메모돼 있다. 임진왜란 이후 들어온 고추가 일반화되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김치를 담글 때 고춧가루 대신 천초와 후추, 겨자.파 등 향신료가 많이 사용됐던 점도 이채롭다.

"책 뒤표지 안쪽을 좀 보십시오. '이 책은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라. 딸자식은 이 책을 베껴가되 가져갈 생각을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라'는 당부의 글이 있습니다.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유교사회의 단면이 보이지요. 요즘 같아서는 친정 어머니가 딸에게 주는 요리책이라야 인기가 있을 텐데…. "

영양군에서는 장씨 부인을 기리는 '요리관'과 '유물관' '예절관' 등을 지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한 차례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요리를 실습하고 맛을 보는 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문의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054-680-6055).

조씨는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요리 섭산삼과 조개탕을 밥상에 자주 올린다고 했다. 만들기가 쉽고 맛보면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섭산삼은 더덕 향기가 물씬 풍겨서 입맛을 잃기 쉬운 봄날 딱 어울리며, 조개탕은 과음한 다음 날 해장에 그만"이라고 추천했다.

■ 따라해 볼까요

▶섭산삼(재료 4인분)

.재료:더덕 100g, 소금 1작은술, 찹쌀가루(젖은 것) 1컵, 튀김기름 2컵, 꿀 1/2컵

①더덕은 껍질을 벗기고 세로로 반 갈라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겨 편 뒤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우린다. ②더덕을 건져 물기를 없앤 후 찹쌀가루를 꾹꾹 누르면서 결 사이사이에 들도록 골고루 묻힌다. ③튀김 기름을 160도로 데워서 찹쌀가루 묻힌 더덕을 하나씩 넣는다. 노릇한 색이 나면서 바삭하게 될 때까지 서서히 튀긴다. ④튀긴 더덕을 그릇에 담고 꿀을 끼얹거나 찍어서 먹는다.

▶조개탕(재료 4인분)

.재료:모시조개 400g, 물 8컵, 소금 1큰술, 술 2작은술, 마늘 1알, 부추 조금

①모시조개를 준비하여 해감을 토하게 하고 깨끗이 씻는다. ②냄비에 준비한 물을 붓고 끓기 시작해 조개 입이 벌어지면 불을 줄이고 위에 뜨는 거품을 걷어낸다. ③마늘 한 쪽을 저며 넣고 소금 1큰술과 술 두 작은술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상에 차려낼 때 부추를 넣으면 색도 곱고 그 향이 조개의 비릿한 맛을 없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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