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DJ와 교감 있었나 … 탈당하며 "중도 통합" 내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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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백범 김구 선생 묘지를 찾는다. 그때마다 "중도 통합의 길을 걸었던 백범은 실패했지만, 사람들은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19일 백범기념관에서 "백범의 정신을 따르겠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가 아닌 '중도 통합'이 그가 표면에 내세운 탈당 이유다.

한나라당이 '낡은 수구'이기 때문에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정치 입문 후 줄곧 김영삼 전 대통령의 노선을 따라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손 전 지사가 '이인제 학습효과'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탈당을 결행하는 데엔 김 전 대통령 세력과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사람들에 대한)대북 송금 특검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해 왔고, 최근 들어 "대북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일관되게 펴 왔다.

김 전 대통령이 손 전 지사의 일관된 햇볕정책 옹호 주장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손 전 지사를 고무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한나라당에선 찾기 어려웠던 '중도 통합+호남 기반'의 매력이 손 전 지사를 당 밖으로 끌어낸 매력 포인트 아니었겠느냐는 얘기다.

다른 외부의 힘들도 컸다. 범여권 일각에선 "'제3지대 정치세력'을 규합해 신당을 만들자"는 뜻을 손 전 지사에게 거듭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신당 창당 모임인 '전진코리아'의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설득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탈당 배경으론 오랫동안 5%를 맴도는 낮은 지지율이 꼽힌다.

당내 대선후보 '빅 3'로 불리지만 40%대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20%대의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한계를 절감했다는 것이다. 손 전 지사의 상품성인 '중도 통합의 리더십'이 당내에서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선인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할 게 뻔한 상황에서 그가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란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손 전 지사 캠프에선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꼽는 사람도 많았다.

이 전 시장은 7일 "(손 전 지사가) 안에 남아도 시베리아에 있는 것이지만, 당 밖으로 나가도 추운 곳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3일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선 '손학규 사람'으로 분류됐던 임해규 의원이 사회를 맡았다. 손 전 지사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란 얘기도 측근들이 전했다. 지난 주말 설악산 일대를 돌며 "이 전 시장은 무슨 일을 했나. 일자리를 몇 개나 만들었나"라고 비난했다.

손 전 지사를 정치로 이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도 그의 결단을 부추긴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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