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연구회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세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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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87년 국민항쟁 이래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돼 가는 가운데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랜 군사독재를 극복하면서 민주화 그 자체를 절대적 이상으로 내세웠던 것에 비하면 한걸음 더 나아간 논의들이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또 포퓰리즘(populism:대중 영합주의)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6일 철학연구회(회장 이한구) 주최로 경희대 본관 세미나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학술대회는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을 주제로 내걸었다. 주목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관계를 다룬 부분이다.

김일영(성균관대.정외과) 교수는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 초기까지의 개혁정치를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결합 가능성'이란 관점에서 이색적으로 분석했다. 진보진영으로 부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추진한다고 비판을 받으며, 동시에 보수진영에서는 포퓰리즘적이라고 비판 받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가 논문이 던지는 화두다.

분배를 강조한다고도 할 수 있는 포퓰리즘과 기업.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고 여겨져 왔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와 동유럽권에서 관찰되는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게 아니냐고 김 교수는 진단한다. 그는 또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 때 집권한 정권일수록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이란 기묘한 결합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한편으론 경제를 투명하게 하는 개혁을 추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중산층과 서민의 복지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본질이 다수 대중이 주권을 행사하고, 또 정치인들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그 자체에 포퓰리즘적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와 같은 성찰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관계를 살펴본 것은 서병훈(숭실대.정외과) 교수의 논문 '포퓰리즘:민주주의의 딜레마'다.

서 교수는 다수 대중의 뜻이 법이 되고 정치적 결정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포퓰리즘적 요소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대중이 올바르게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화근(禍根)이 될 수도 있지만,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중의 지지 확보에 사활을 건다는 데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사려깊은 민주적 시민'이 '양심적이고 현명한 정치인'을 뽑는다면 포퓰리즘은 발붙일 공간이 없을 테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데 고민이 있는 것이다. 서 교수는 '아첨꾼 정치인'의 입지를 축소해 가는 방향이 상대적으로 쉬운 길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민주주의의 타락과 포퓰리즘의 엄습을 피하기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한다.

다른 한편으론 김일영.서병훈 두 교수의 글을 통해 볼 때, 우리 학계에서 포퓰리즘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 자체에 대한 공감대를 먼저 형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 밖에 홍윤기(동국대.철학) 교수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윤평중(한신대.철학) 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정치 동학(動學)-21세기 한국의 진보와 보수', 박형준(동아대.사회학) 교수의 '정보화 사회의 불평등과 대안 모색'등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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