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 삼판 뭇매맞고 탈출/시민들 폭력시위/캄보디아 평화계획에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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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놈펜 AP·AFP=연합】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이 27일 방콕에서 프놈펜으로 귀국직후 성난 군중들의 집단습격을 받아 부상한채 간신히 구출돼 급거 방콕으로 돌아갔다.
캄보디아 4개 정파의 하나인 크메르 루주 지도자 키우 삼판의 귀국이 좌절됨으로써 지난달 유엔중재로 체결된 캄보디아 평화협정의 이행이 위태롭게 됐으며 다음달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최고민족평의회(SNC) 제1차 공식회의도 취소될 것으로 전해졌다.
키우 삼판은 이날 방콕에서 항공기편으로 귀국,캄보디아 정부가 마련해준 별장에 묵었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 집권당시 학살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사람들을 비롯한 수천명의 프놈펜 시민들이 집앞에서 투석등을 하며 귀국반대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일부 군중들이 집안에 난입,돌과 몽둥이 등으로 그에게 집단폭행을 가했다.
숙소를 지키던 소수 경찰 병력들이 거의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군중들은 키우 삼판의 별장내부 집기와 가재도구·짐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밖으로 끌어내 불을 질렀다. 키우 삼판은 머리와 가슴 등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침실바닥에 쓰러져 있다 급히 출동한 군병력들에 의해 구출됐다.
이날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의 귀국반대시위는 당초 캄보디아 정부측이 사주한 관제 시위로 시작됐으나 폴포트 정권당시 대량학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경찰측의 소극적 대응아래 통제불능상태로 빠져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키우 삼판 일행은 군장갑차량편으로 공항으로 직행,귀국 9시간만에 특별기편으로 방콕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측은 28일 전날 프놈펜에서 발생한 키우 삼판 폭행사건에도 불구,캄보디아 평화협정을 계속 준수할 것임을 밝혔다.
◎대학살의 주역… 폴 포트의 분신/크메르 루주 잔치판 깰 우려도(해설)
크메르 루주 정치지도자 키우 삼판(60)이 27일 캄보디아땅을 밟자마자 성난 군중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채 다시 방콕으로 쫓겨감으로써 캄보디아사태는 뜻밖의 암초에 얹히게 됐다.
13년간 밀림투쟁을 지휘하다 지난달 13일 체결된 파리평화조약에 따라 캄보디아국가최고회의(SNC)에 참여키 위해 어렵게 프놈펜으로 돌아운 키우 삼판은 「킬링필드」의 주인공답게(?)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다시 프놈펜을 떠난 것이다.
가까스로 「평화의 장」을 맞이하는데 성공했던 캄보디아 밀월시대는 이날의 사태로 그 걸음마단계에서부터 어긋나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크메르 루주정권의 핵심 설계자로 알려진 키우 삼판은 말쑥한 용모와 부드러운 미소와는 달리 크메르 루주 통치기간인 지난 75∼78년사이에 벌어진 「킬링필드」의 지휘자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크메르 루주정권 「민주캄푸치아」의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키우 삼판은 치밀한 두되와 뛰어난 조직력을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31년 7월27일 베트남과의 국경지대인 스바이 리엥에서 출생한 키우 삼판은 58년 파리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59년 귀국후 좌파신문인 롭세르바퇴르지를 창간,활발한 사회주의 활동을 편 키우 삼판은 당시 국가원수였던 시아누크공의 미움을 사 2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출옥한 키우 삼판은 「좌파붐」을 타고 국회의원에 진출,국민여론을 무시못한 시아누크공에 의해 상무장관에 임명됐으나 무장봉기의 시발점이 됐던 67년의 쌀폭동을 배후조정한 혐의로 상무장관직에서 해임됐다.
키우 삼판은 71년 6월 론놀장군의 쿠데타로 시아누크정권이 붕괴되자 폴 포트와 손잡고 게릴라부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현재 크메르 루주의 세력계보도는 폴 포트를 정점으로 정치담당에는 키우 삼판이,군사담당에는 손 센과 이엥 사리가 맡는 이선구도로 짜여 있다.
따라서 거의 폴 포트의 분신이라고 할만한 키우 삼판이 캄보디아국가재건회의에 참석해보지도 못한채 쫓겨남으로써 폴 포트를 격분시켜 결국 캄보디아의 평화잔치판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크메르 루주는 새나라건설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키우 삼판사태」는 가뜩이나 엉거주춤해 있는 크메르 루주세력에 평화회담 불참을 선언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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