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저쪽」연속극 끝낸 고두심씨(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람이 근본 잃어선 안되죠”/신분 달라져도 사는건 한마음/서민애환연기 남몰래 눈물도
탤런트 고두심씨(40)가 얼마전 막을 내린 MBC­TV 주말연속극 『산너머 저쪽』에서 실감있는 연기를 했다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워낙 연기파 이미지로 자신의 색채를 간직해온 그녀인지라 별반 색다를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가진 것 없는 서민층에서 벗어나 조금 가진 중산층에 끼어들며 겪는 갈등을 잘 표현해낸 것이다.
몸은 아파트로의 이사가 암시하듯 신분격상이 됐지만 마음만은 지난 시절 이웃사람들과의 정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귀향본능에 초점이 맞춰졌다.
고씨를 통해본 이 드라마의 특성은 두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청률 싸움과 간판 TV드라마 위치를 모두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주말극이 그동안 강렬한 내용이나 삼각관계의 애정물에 쏠려 있었다면 이 드라마는 이런 관행을 탈피한 점이 그 하나다.
극의 전체 흐름이 잔잔하고 소리없이 진행됐으나 주제전달은 오히려 힘이 있었다. 또다른 면은 고씨가 아니었다면 드라마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데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삼 연기파 인상을 굳힌 그녀와 인터뷰했다.
­이번 드라마를 마치고 난뒤의 감회가 예전과 다른 점이 있었을텐데요.
▲늘 드라마를 끝내면 시원섭섭하죠. 그러나 이 드라마는 주말극치곤 유별났어요. 출발전부터 다소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기존의 개념을 뛰어넘는 모험이라는 시각이 많았거든요. 처음 드라마 출연제의를 받았을때 약간 주저했어요. 그러나 큰 고민없이 참가쪽으로 마음을 굳혔어요. 꼭 인기에 편승하는 드라마가 아닌데다 연출자에 대한 믿음이 작용한 겁니다.
장수봉 감독(연기자들은 담당PD를 이렇게 부른다)은 새로운 감각이 있고 뭔가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를 남기곤 했거든요. 극이 진행될수록 제 자신과 이웃의 사람사는 얘기라 힘도 나고 자신감도 붙었지요.
­주어진 배역에 대한 해석을 위해 나름의 연기방향을 설정하는게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춤추는 가얏고』에서 보여준 열정적인 연기와는 전혀 딴판 아닙니까.
▲크게 다르죠. 또 달라야 되고요. 이번에는 살아가는 얘기를 펼쳐보여야 하니 연기도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주부의 모습을 표출하느라 노력했어요. 자칫 재미없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의 염려를 없애려고 꾸밈없는 연기에 치중했지요.
가령 외출하는 장면때 숄을 두르지 않거나 밥을 먹다 입가에 밥풀이 묻어도 그대로 놓아두는 식이에요. 장면마다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겁니다.
­극중내용에서 중산층으로의 편입으로 인해 겪는 갈등을 잘 연기했는데 어떻게 나타내려고 노력했는지요.
▲괜찮은 아파트로 옮긴 뒤 옛날 살던 때처럼 이웃에 떡을 나눠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가져온 성의를 봐서라도 금방 받아야 하는데 그렇질 않아요. 마지못해 한쪽을 잘라 가져가며 『요즘 누가 이사떡을 받느냐』는 말까지 덧붙이는 겁니다. 그 사람도 아파트로 이사오며 생활이 나아진 축에 드는데 이미 생각이 많이 변한 상태였던 거예요. 연기하면서 나 스스로 충격을 받았어요. 비록 드라마안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만 있어서도,또 저런 사람만 있어서도 곤란하다. 싫은 것은 싫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또 이런 사람도 실제로 있겠구나.」
옛날 같으면 엄두도 못냈을 헬스크럽 출입이나 기타취미활동을 하자는 주변의 종용에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많이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휩쓸려 가면서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되죠. 「본질만은 잃지 말자. 겉은 변할지라도 속마음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의 정겨움과 따뜻함을 잃지 말자. 옛날것도 버리지 말고 고이 간직해야 될 것이 있지 않은가.」
작가·연출자의 고민이 짙게 깔린 부분이기도 했어요. 어느 정도 이 분위기를 맞추려고 했는데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드라마에서 궁극적으로 남기려고 했던 주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이 본질적인 면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일관된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졸부든,박봉의 월급쟁이든 현대인이 갖는 예전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랄까요. 안간힘을 쓰며 아름답게 간직하려는 것,다시 말해 과거의 한때로 지나갔지만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아무리 개인중심으로 사회가 바뀐다해도 이래선 안되지 하는 저마다의 고민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당초 계획은 주인공이 복부인으로 변하며 겪는 갈등을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럴 경우 드라마의 흐름과 연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복부인으로 그렸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연출자·작가가 배역이 갖는 역기능적인 면이 많다고 판단해 줄거리를 약간 바꾼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설사 원래대로 했더라도 큰 변화는 없었으리라 봅니다.
어차피 사람은 양면성을 갖고 있고,좋고 나쁜 것이 얼마나 더 표출되느냐일 뿐이지 드라마에서 얘기하려했던 주제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연기하는 제 입장도 비슷하고요. 옛날이 그립고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는 많은 이의 심정을 공감있게 표현하려 했겠지요.
­드라마에서는 그렇다치고 평상시 생활과 스스로의 성격은 어떻다고 보세요.
▲극중 주인공인 별이엄마하고 비교해 딱 부러지게 제성격을 단정짓긴 힘들어요. 별이엄마는 친정어머니와의 갈등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요즘 시대의 한 단면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쭈뼛대며 말을 더듬을 정도로 순종적이다가 나중엔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거든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다 참다 자기주장을 하는 편이에요. 순종형에 현대여성형을 합친 셈이니 물에 물탄듯,술에 술탄듯 해요. 한마디로 무개성적이죠.
­집안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한데요. 촬영만 끝나면 집으로 달려간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집에서 잠옷차림으로 휴식을 취하는게 가장 편해요. 주변에서는 촬영장소와 집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저를 보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특별난 것은 없어요. 이번 드라마를 끝내고 바깥양반(44·사업가)과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25일부터 시작되는,곽지균 감독이 만드는 영화 『이혼하지 않은 여자』에 출연하느라 공염불이 됐어요. 꼭 가보고 싶은 여행이었는데 아쉬워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어요. 그이가 구혼할때 결혼후 꼭 로마의 중심가에 있는 분수대옆에서 햄버거를 사준다고 했거든요. 이번 기회를 놓쳤으니 그때가 언제가 될지 막막해요. 남들은 웃겠지만요….<김기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