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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샘욕」 즐기며 관광도 "한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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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창녕 부곡온천>
소설(23일)을 눈앞에 두고 냉랭한 날씨로 바뀌면서 따스한 온천이 생각나는 계절이 다가왔다.
전국에 목욕과 레저시설이 함께 있는 온천은 부곡·온양·유성·수안보·백암등 20여개소. 그중 경남 창녕군에 있는 부곡면은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제각기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대표적 온천타운.
섭씨75도의 유황온천은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신경통 등에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곡이 온천으로 개발된 것은 지난73년. 3개의 시추공에서 온천물이 솟아 오른 뒤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개발된 시기는 78년 부곡하와이 한국관이 문을 열면서부터.
옛날에도 지금의 부곡온천지역에 「옥샘」이라는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어 온천의 기능을 해왔다 한다.
지금은 부곡면 거문리 일대 50여만 평의 온천지구가 대형빌딩군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
부곡에서 단순히 온천만 즐기려던 대중탕을 이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루정도 묵을 계획을 하고 떠난다면 부곡주위의 명소를 둘러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좋다.
창녕엔 높지는 않지만 경관이 수려한 관룡산·화왕산이 있어 산행도 할 수 있다. 또 산기슭 곳곳에는 전설과 설화가 깃들여있으며 진흥왕척경비·관룡사·하씨초가등 문화재도 잘 단장돼있다. 또한 부곡과 인접해있는 영산에는 만년교를 포함, 3·1운동투사 패중회씨등 호국열사들의 기념비가 있는 호국공원, 함박약수터·석빙고가 있어 드라이브코스로 추천할만하다.
부곡온천을 중심으로 창녕군 일원에 펼쳐져 있는 관광레저시설들을 소개한다.

<부곡온천>
지난 73년 초 신현택씨(70·현재 온천약국경영)에 의해 발견돼 온천지구로 고시된 부곡에는 부곡하와이·부곡관광·로얄호텔·크라운호텔등에 5백여 개의 객실이 있고 호텔규모의 장급여관도 20여 곳이나 있어 숙박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부곡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갖춘 곳은 역시 부곡하와이. 「어린이의 꿈과 낭만의 동산」이란 말에 걸맞게 「파도치는 풀」을 비롯, 3천5백명이 일시에 들어 갈 수 있는 정글탕, 요리와 함께 쇼도 즐기는 대공연 강, 동물박제 전시관, 열대 동·식물원, 생태 박물관, 대형 옴니 맥스영화관, 어린이 오락장 등이 있다.
입장료는 대인 3천8백 원(단체 3천5백 원), 청소년 3천원(단체 2천7백 원), 어린이 2천2백 원(단체 2천원)으로 실내수영장과 쇼 관람, 온천욕, 동·식물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부곡하와이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사우나와 레저시설을 갖춘 또 하나의 종합위락시설인 부곡관광호텔에는 온천물로 계란을 반숙해 먹을 수가 있으며 풀에서의 향어낚시도 일미다.
스포츠시설로는 부곡컨트리클럽을 비롯, 축구장과 테니스장이 있으며 명물음식점으로는 달성현풍할매곰탕집이 있다.
교통은 서울강남터미널에서 서울∼부곡간 고속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정기 운행하며 대구에서는 서부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또 마산에서 부곡행 버스는 오전7시∼오후8시40분까지 왕복한다. 요금은, 9백20원. 문의전화 강녕군 부곡온천 사업소. (0559)(36)5400.

<진흥왕척경비>
여령군 창령읍 교상리에 있는 국보(33호). 본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소풍갔던 학생들이 발견, 학계에 알려진 것인데 기금은 창녕읍내 만옥정에 옮겨져 보존되고있다.
진흥왕척경비는 신라 진흥왕의 4대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황초령·마운령 순수비처럼 국경을 순찰한다는 말이 없고 왕이 새 점령기를 다스리는 내용과 관련된 사항들만 열거돼 있어 「척경비」라 부른다.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새긴 이 비석은 앞부분이 상당히 마멸되었으나 한반도에 전하는 비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영산호국공원>
지금부터 72년 전 인기미년 3월13일 독립유공자 패중회씨등 평균연령 21세의 24인조 결사대가 이곳 창녕 영산에서 봉기, 일제를 향한 육탄투쟁을 펼친바 있다. 이들 선인들의 투쟁은 영산 시위를 시작으로 3월말까지 이어진 영산 3·1운동, 그 후 1920년대 전 기간을 통해 청년운동·소년운동·농민운동 등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들은 당시 시위의 주모자라 하여 모두 옥고를 치렀으며 고문후유증으로 해방 전에 16명이나 타계했다. 또 출옥 후에는 일경의 감시를 피해 가족마저 남겨놓은채 만주 등지로 떠나 숨어살기도 했다.
창녕군과 지방유지들은 지난 55년 9월 호국공원을 열고 당시의 봉화대를 재현했으며 기념비도 세운바있다. 이곳에는 보물5백64호 영산만년교가 있으며 낙동강 전투의 마지막 보루였던 영산지구전적기념비가 함께 자리 잡고있다.

<양파 집산시장>
창녕은 전국 양파의 30%를 생산하는 양파집산지. 연간생산량이 6만 5천t, 경작면적이 4백여만평에 이르는 창녕의 양파는 알이 매우 굵고 맛도 좋기로 이름높다.
창녕에 양파가 뿌리내리게 된 것은 해방직후. 독농가 조성국(74)·성재경(작고)씨 등이 주축이 돼 일본에서 채종·보급해 뿌리를 내려는데 성공했다.
해마다 11월에 파종, 6월에 수확하는 창녕양파는 ㎏당 5백 원 안팎이며 대부분 중간상을 통해 대도시로 출하된다. 문의전화 양파공판장 (32)9708.

<술정리 하씨 초가>
창령군 창령읍 술정리에 소제한 억새지붕의 2백30년 묵은 초가집. 조선시대의 민가가옥구조와 건축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재다.
대대로 하씨가 살아온 이 초가집은 마루판의 윗면이 평면, 아랫면은 원목을 그대로 활용했으며 못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색.
서까래도 구멍을 뚫어 짜 맞추었고 지붕은 양토없이 밀대로 엮어 얹었다. 현재 소유자는 하병수씨. ②4584.<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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