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개벽』|동학역사 해석 잘못 많다|국사학자 이리화씨 『역사연구』 겨울호서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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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동학의 2대교주 최시형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개벽』이 오히려 동학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역사학자의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동학연구 전문가인 국사학자 이리화씨(역사문제연구소장)는 곧 발간될 계간 『역사연구』겨울호에 「역사를 왜곡한 김용옥의 시나리오 개벽」이란 글을 기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영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시나리오를 쓴 김용옥씨(전고려대교수)를 비판했다.
이씨는 서두에서 『동학은 19세기 이후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건인데,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영상매체인 영화로 다루었기에 「개벽」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며 비판을 시작.
이씨는 『영화 전체를 평가하는 「영화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바탕해 비판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주로 시나리오를 쓴 김씨를 맹비판했다.
특히 결론에서 『세계 최초로 「기철학」이라는 명명을 한 기철학자는 그답게 기철학 공부나 할 일이지 섣불리 천박한 역사의식으로 역사를 논단해서는 안된다』고 단정, 김씨의 동학 해석에 대한 강한 반감까지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씨는 『영화가 소설과 마찬가지로 픽션(허구)이 가미되어야 함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며 영화 속의 허구적 상황설정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역사를 기본 줄거리로 삼을 경우 함부로 픽션을 가할 수 없는 제약을 받게 된다』며 역사를 다룰 경우의 왜곡 위험성(?)을 특수성으로 강조.
이씨의 논지는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외세와의 관계설정에서의 문제점이다. 동학은 「서학」에 반대되는 이름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배척사상이 질게 깔려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외세문제가 거의 도외시되고 있으며 오히려 「외세와 맞서보았자 패배만이 있을 뿐」이라는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구체적 예로 농민군의 2차 봉기 당시 주요 봉기 원인이었던 일본군의 경복궁 강점등 외세 침입을 거의 다루지 않고 다만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들이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죽어 가는 장면만 부각시킨 것등을 지적했다.
둘째는 동학의 봉건주의 타파 노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동학은 당시 횡행했던 벼슬아치·토호의 부정에 대한 응징, 지주·소작관계의 불평등 해소, 천민들의 권리회복운동등 봉건제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노력으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같은 노력을 가볍게 다루었을 뿐 아니라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극중에서 농민 봉기를 겪은 여인이 『동학은 이가 갈린다』고 말하게 한 것, 봉기가 실패한 뒤 주인공인 최시형의 입을 빌려 『30년 노력이 헛되었다』고 평가한 것, 핵심인물인 전봉준을 「무수한 희생자만을 내고 동학교단 조직을 결딴내는」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한 것등이다.
셋째는 역사적 사실자체에 대한 왜곡이다. 예컨대 동학교도 이필제의 봉기 당시 쌀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돈을 주어 소를 사게 하는 등의 사실기록은 있으나 영화에서처럼 민가에 물을 지른다거나, 어린 아이를 불에 타죽게 하는 따위의 비정을 저지른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또 극중에서 전쟁 당시 봉기를 주장하는 인물로 묘사된 서법학은 뒷날 농민군토벌의 공으로 벼슬을 받은 밀정이라는 것이다. 극중의 보은집회에서 전봉준이 최시형에게 봉기를 서두르자고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록에 따르면 전봉준은 당시 보은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별도의 집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아마도 봉기를 부정적으로 그리려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있고, 역사적 사실에 무지해 오류를 범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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