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증,종업원 자신을 위한 것(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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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위생과 건강을 감시·감독할 책임을 진 의료기관들의 일부가 이들의 질병전파를 방조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경악과 분노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검찰수사에 따르면 서울시로부터 건강진단수첩,일명 보건증 교부기관으로 지정받은 일부 의원들이 제대로 검진도 하지 않은 채 올들어서만도 무려 3만여장의 보건증을 무단으로 발급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불법행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병원에 오는 것을 꺼리는 심리를 이용해서 의료지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브로커까지 동원해 유흥업소를 순회 방문시키며 업소내에서 보건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래서 챙긴 돈이 보건증 장당 8천원씩 모두 20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실제로 성병에 감염된 보균자도 환자가 아닌 것처럼 버젓이 보건증을 소지하게 했다. 또 유흥업소 취업이 금지된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까지 보건증을 발급해 주는 비리를 서슴지 않았다.
현행 식품위생법·공중위생법·전염병예방법 등 관련법규에는 일반유흥업소나 특수업체 종사원,다방·여관 등의 종업원은 건강진단을 받게돼 있고,그 결과를 기재한 보건증을 반드시 소지하게 돼있다.
이러한 규정은 이들 종업원들의 위생과 건강이 이들 업소를 이용하는 고객의 보건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질병예방과 전파의 차단을 위해서 마련된 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시행자이며 감독자인 지정 의료기관의 공중보건과 위생은 무시하고 개인적인 돈벌이에 오히려 이를 악용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국민에 대한 배임이 아닐 수 없다. 엄중한 문책과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천적인 책임은 정부 보건당국에 돌아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국적인 실정은 차치하고라도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수도 서울에 유흥업소의 위생과 보건을 감시하는 보건소가 22개소밖에 없고 시설도 열악할 뿐만 아니라 전문인원도 보건소 1개소에 평균 4∼5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인원·장비의 절대부족 때문에 보건증 발급업무의 대부분을 1백여개의 지정병원에 위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능력의 부족으로 보건소가 업무를 위탁하는 것까지는 불가피하다 해도 그렇다면 위탁병원에 대한 감독관리라도 철저히 했어야 마땅하다. 감독소홀의 문책은 물론이고,지정병원이나 브로커들과의 유착이나 뒷거래의 의혹마저 떨쳐버리기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이 점도 엄밀히 추궁하고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건소와 지정병원과의 상호업무체계를 재점검해서 보강해야 하겠다.
위생업소 종사자들도 자신들에 대한 정기검진과 보건증 발급제도가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자각해야 한다. 질병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병균의 전파 우려 이전에 소중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의 보존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건강의 유지가 돈벌이 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를 스스로 깨닫고 정기적인 보건검진에 자발적으로 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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