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팩시밀리 과외」 성업(수도권 25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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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제지부터 해답전송까지 “척척”/문제풀다 막힐때 즉시 지도/“비용부담 적고 시간절약” 인기/서울 3개사 지방학생도 몰려
새벽 5시,수학공부를 하던 오수용군(17·K고1·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은 문제가 잘 안풀리자 방구석에 설치된 팩시밀리 전화를 집어든다.
『○○아카데미죠. 2차함수 문제가 잘 안풀리는데….』
문제 내용을 설명한뒤 5분쯤 지났을까.
『지­익,지­익』소리와 함께 팩시밀리를 통해 문제풀이 과정과 정답이 적혀있는 해답지가 전송된다.
비슷한 시간 한태희군(17·H고2)도 영어 구문바꾸기 예문과 함께 요점정리가 쓰인 설명문을 팩시밀리로 받아 열심히 외우고 있다.
이를 전송하는 곳은 서울 삼성동 A아카데미(대표 장기호·27) 사무실.
7∼8명의 강사팀이 일부는 전화를 받고 일부는 참고서를 뒤적이며 「A4용지」에 수식 또는 영어구문을 쓰고,이를 전송하는 작업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른바 팩시밀리를 이용한 「원격 과외학습」이 이뤄지는 현장.
팩시밀리 과외회사의 기본적 일상업무는 매일 상 중·하로 난이도를 구별,영어·수학 학습지를 만들고 이를 가입 학생회원에게 보내는 것. 학생들은 이 문제를 풀어 팩시밀리로 되보내고 회사에서는 전문강사팀이 답안지를 채점·분석해 틀린문제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팩시밀리를 통해 다시 전송한다.
물론 학습지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를 풀다가 막힐 경우 전화로 문의하거나 팩시밀리를 통해 문제를 보내면 10분내에 해답지를 전송하는 일도 있다.
지난 4월 팩시과외 회원으로 가입한 한군은 『집에서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을때 즉시 답을 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한군의 부모도 『과외비도 적게들고 밤길 귀가의 걱정을 덜게돼 편리하다』고 말한다.
A아카데미가 문을 연 것은 지난 2월.
『팩시밀리 보급이 급증추세인데다 강남지역 일부 학생들이 학교 교사에게 월50만∼1백만원씩을 주고 비밀 고액 「팩시과외」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비용부담을 줄이면서도 같은효과를 얻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현재 이 회사 가입학생은 60여명.
회비는 중·고교생 10만∼12만원선. 팩시밀리는 무료로 설치해준다.
강사팀은 전현직 학원강사 15명. 이들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학생들의 질의에 답해주고 있다.
이같은 팩시과외 전문회사는 현재 서울에 3곳이 있다.
서울 잠실의 S교육시스템도 올4월에 문을 연 팩시과외 회사.
30여명의 중등교원 자격증을 소지한 강사팀을 갖추고 서울뿐 아니라 부산·대구·울산·제주까지 모두 3백여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사는 각기 다른 4개사가 연합,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즉 팩시밀리 제조업체인 K사는 팩시밀리 설치·관리를 담당하고 S도서출판은 학습지·교육기자재를 만든다.
이밖에 지난달에는 F아카데미도 같은형태의 회사를 설립,회원을 모집중이며 팩시밀리 보급 급증추세를 타고 이같은 팩시과외 회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관련,서울시 교육청 한강희 사회교육 과장은 『현행 학원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팩시과외를 단속할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불법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팩시밀리 과외는 과외학습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성업을 이룰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방법은 교육을 「가르침」의 차원이 아닌 「지적상품 판매」차원으로 전락시키고 학생들을 정서가 메마른 폐쇄적 인간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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