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신용카드로 김철수 → 홍길동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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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30.여)씨는 최근 포털사이트인 싸이월드를 통해 부업으로 인터넷 의류판매상을 해보기로 했다. 입소문을 내기도 좋고, 다른 인터넷 직거래장터에 비해 수수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명을 써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김씨의 이런 고민은 쉽게 해결됐다. 주민등록번호와 신용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명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실명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 싸이월드에 '씨*'라는 가명으로 미니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싸이월드뿐이 아니다. NHN, 다음, 롯데 패밀리,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국내 주요 인터넷 사이트도 본인 확인 절차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사이트의 실명 확인을 대행해 주는 S신용평가사 시스템의 허점 때문이다.

◆유령인 '홍길동' 만들기=본지는 실제 주요 사이트에 가명으로 가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해 봤다. 우선 S사 홈페이지에서 '본인 실명 등록하기' 코너에 들어가 '실시간 실명 등록' 메뉴를 선택했다. '홍길동'이란 이름을 주민번호, e-메일과 함께 입력한 뒤 신용카드인증 방식을 선택했다. 입력한 주민번호의 실제 주인 이름으로 발급된 신용카드의 카드번호를 입력하면 모든 작업이 끝났다. 해당 주민번호의 소유자가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세탁'된 것이다. 이후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S사가 실명 확인을 대행하고 있는 주요 포털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름을 바꿔 활동 중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나 블로그 등 1인 미디어가 확산되는 추세에서 유명인이나 지인의 이름을 도용해 불법 콘텐트를 제작할 경우 명예훼손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실명 확인 어떻게 이뤄지나=개별 웹사이트들의 실명 확인은 S사를 포함한 신용정보업체 세 곳과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에서 대행해 주고 있다. 특정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이용자가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이를 신용정보업체가 구축해 놓은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와 비교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신용정보업자들은 은행연합회와 보험.증권사 등 금융기관과 통신사 등으로부터 수집된 회원 정보로 개인정보 DB를 구축한다.

문제는 S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이용자가 직접 개인정보를 DB에 입력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개설할 때 신청서에 적은 주민번호와 자사 홈페이지에 직접 입력된 주민번호의 일치 여부만 확인한다. 이름이 동일한지는 따지지 않는다. 따라서 주민번호에 엉뚱한 이름을 덮어씌워 유령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실명제 도입 전 관리 철저해야"=정부는 게시판 실명제(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7월 27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8일자 관보에 입법예고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하루 방문자가 30만 명이 넘는 포털(뉴스 사이트는 20만 명 이상)은 공인인증기관이나 신용정보업자 등을 통해 실명 확인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신용평가기관의 실명 인증에 관한 감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숭실대 배영(정보사회학)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상당히 이뤄졌지만 개인정보의 위.변조를 막을 세밀한 장치가 부족하다"며 "이용자들이 안정된 방법으로 실명 확인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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