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에 용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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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숙희 <성심여대강사·여성학>
『딸을 낳으면 지나가던 새우젓 장수도 섭섭해한다.』 이것은 2년 전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한 여학생이 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삵을 정리해 내는 리포트에 쓴 글귀다. 당시에는 그 표현이 재미있어서 웃었는데 이번에 둘째 아이를 낳고 나니 그 말이 내 코앞에 닥쳐버렸다.
『그래, 딸이 좋다. 낳을 때 뿐이지.』
『이렇게 둘 다 건강하니 그게 다행인줄 알아라.』
그래도 이런 위로성 축하인사는 양반이다. 딸이라고 해서 섭섭하지 않다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설마, 또 딸 낳으려고 애를 낳은 건 아닐 것 아닙니까』라고 따지려 드는 데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또 어떤 사람은 딸만 낳았는데 서운한 티를 내보이지 않는다며 내 남편을 칭찬하고 나서서 우리 부부를 머쓱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친정어머니는 『너 딸 낳았다는 소식에 우리 동네사람들이 다 섭섭해한다』고 하셨고 국민학교 5학년인 조카애는 자기친구의 어머니가 『쯧쯧쯧, 아깝다』고 했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시늉까지 해 어른들을 웃겼다.
퇴원하는 날 의사선생님께 인사를 하면서 산부인과에 누워있는 동안 「남녀평등」이라는 말이 공염불처럼 느껴지더라는 얘길 했더니 『애걔, 고까짓 걸 가지고 뭘 그래요』하는 게 아닌가. 한달 전에는 20대 남자가 딸을 낳았다고 밤에 술 먹고 와 주정을 하는 바람에 그 아내가 다음날로 퇴원해버렸으며, 어떤 시어머니는 의사에게 왜 딸을 낳게 했느냐며 책임추궁까지 한다는 것이다.
또 지금도 시골병원에서는 딸을 낳으면 입원료를 좀 싸게 해주고 아들 낳으면 비싸게 해서 수지 균형을 맞추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아들과 딸을 고루 키워보고 싶은 것은 부모 누구나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아들만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으면서 딸만 있는 경우는 마치 재수해서도 낙방한 수험생취급을 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장남이나 몇 대 독자와 결혼한 여자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을 마음고생, 그리고 그들이 낳은 딸들에게 내려지는 불완전한 축복을 생각하면서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여자」라는 이름에 회의를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눈·코·입은 물론 새끼발가락의 발톱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다 갖추고 나온 딸 아이를 보면서나는 한 생명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내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잘못된 세상의 가치평가를 모른 채 천진하게 웃고 있는 새로 태어난 딸들에게 우리가 해 주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딸들을 희망으로 받아들여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이 가을, 딸을 낳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소리치고 싶다. 딸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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