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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딸­아들 “모스크바 상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서울의 이복동생 원경스님 핏줄찾아 소 방문/밤새며 「기구한 삶」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
박헌영이 남긴 이복남매가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극적인 상봉을 했다.
『평양의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남매를 나의 유일한 혈육으로 알고 그들이 통일될 때까지 살아있기만을 기원해 왔습니다. 서울의 또다른 동생이 살아서 모스크바까지 찾아 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북한 부수상겸 외무상을 지내다 「미제간첩」으로 몰려 총살당했던 박헌영의 딸 박비바 안나씨(63·무용가·모스크바 모이세예프무용학교 교수)는 지난 19일밤 자신을 찾아 서울에서 온 원경스님(51·경기도 모사찰주지)이 이복동생이라고 소개하자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녀는 잠시동안 스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후 『맑지 않은 목소리 하며 눈언저리 등이 아버지를 빼닮았다』면서 가까이 다가가 두 손을 꼭 잡으며 누나의 체온을 건네주었다.
두남매의 극적 혈육상봉은 박헌영이 해방전 충북 청주에서 지하활동을 하다 만난 정씨라는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원경스님이 「박헌영의 친딸이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본지기사(91년 7월12일자 1면)를 읽고 모스크바를 찾아가 이루어졌다.
두 남매는 이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며 한국유학생의 통역으로 자신들이 걸어왔던 기구한 삶을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했다.
비바 안나씨는 아버지 박헌영의 모스크바동방공산대학 유학길이었던 1928년 가을 소련땅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부인 주세죽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며,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귀국으로 고아원에서 자란 파란만장한 인생역경을 전하며 여러차례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46년 7월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버지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났고 그때 선물받은 다이아몬드반지를 꺼내 동생에게 보여줬다.
원경스님이 『네살때인 1944년 어머님이 돌아가신뒤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던 큰스님에게 맡겨졌고 전국의 사찰을 전전하면서 이 손 저 손을 거쳐 천덕꾸러기로 자라나는 통에 핏줄의 끈도 다 끊어져버렸다』며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풍비박산된 피붙이에 대해 상세히 전하자 비바 안나씨는 연거푸 줄담배를 피우거나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원경스님은 『다섯살 때인 45년 큰아버지(박지영)가 서울로 데리고 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성년이 되면서부터 아버지의 사형선고일(55년 12월15일)을 기일로 정해 해마다 절에서 제사를 지내며 숨어살던 친척들과도 만나기 시작했고 70년대 종반에 친척들이 나의 속명 박병삼을 족보에도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원경스님은 자신들의 상봉을 감격스럽게 지켜보고있던 매형 빅토리바노비치씨(62·화가)에게 『서울에 돌아가 누님·매형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비바 안나씨도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흙 한줌을 모스크바로 갖고와 어머니 묘에 합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남매와 비바 안나씨의 남편은 20일 오전 쌍둥이 손녀(4)를 데리고 모스크바시내 중심가 공동묘지에 있는 어머니 주세죽의 묘를 찾아 성묘하면서 『평양에서 태어난 두 남매·동생이 통일될 때까지 살아 함께 모여 살자』고 약속했다.<모스크바=김국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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