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車 히든 스토리] “한국에서 떠야 세계에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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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닛산’의 한자 표기는 ‘日産’. 이름에서부터 일본차의 자부심이 잔뜩 담겼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닛산은 지구상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한국 소비자를 잡기 위해 몸을 낮추고 있다.


한국이 세계 첨단 제품의 경연장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글로벌 기업들은 신제품을 개발하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을 보여 테스트를 받고, 단점을 보완한 뒤에야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하지만 유독 자동차만큼은 예외였다.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차는 차종도 매우 한정돼 있고, 해외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선보인 모델을 비싼 값에 파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국내 완성차업체들조차 같은 차를 수출 때보다 높은 가격에 팔아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닛산은 이런 관행을 과감히 깼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따끈따끈한 신차를 한국에서 데뷔시키고, 다른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끈 차량이라도 국내에 들여올 때는 ‘한국식’으로 바꾼 뒤에야 내놓는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10월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도록 한 ‘뉴 G35’ 모델 발표회.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가 새로 개발한 뉴 G35는 세계 최초로 서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차량은 특히 동양적 미를 강조하는 등 한국시장에 대한 닛산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뉴 G35는 이미 출시 전부터 2007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올해의 북미 자동차’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성능과 디자인 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을 시발점으로 세계시장의 판도를 바꿀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G35는 우선 내외관 디자인 면에서 동양적 미를 강조해 차별성을 확보했다. 인테리어 역시 한지 무늬를 적용한 알루미늄으로 중앙 센터페시아를 장식한 데 이어 화이트·레드·퍼플 색상으로 귀족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엔진 역시 기존 모델 대비 큰 폭의 개선을 일궈냈다. 315마력의 24밸브 V6 DOHC의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지난 12년 연속 미국 자동차 전문기관으로부터 ‘세계 10대 엔진’으로 선정되는 등 성능과 안전성에서 한 발 앞서고 있다.

▶닛산 인피니티 FX45

서스펜션·엔진·휠 등에도 알루미늄 알로이를 적용해 연료 효율성을 높이고, 차량 전·후의 중량을 균등하게 배분해 주는 운전자 중심의 후륜구동 방식으로 가속시 하중 이동을 최소화한 점도 특징이다.

이 밖에 상·하향등 조정이 가능한 바이제논 헤드라이트와 함께 전·후방에 4개의 주차감지 센서와 리어 뷰 모니터를 장착해 여성 운전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한국닛산 관계자들은 “3개의 딜러망으로도 주문 대기 물량이 밀리는 등 고객의 반응이 확실하다”며 고무된 모습이다.

앞서 출시된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FX 시리즈도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특별히 새 단장을 하고 나섰다. 대형 SUV인 FX는 미국에서 먼저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차량. 혁신적 외관 디자인, 스포츠카 이상의 성능, 그리고 뛰어난 공간 활용과 편의장비로 프리미엄 SUV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하지만 편의장치나 공간활용 면에서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초창기 선보인 FX는 전동 접이식 사이드미러가 장착돼 있지 않았다. 주차공간이 널찍한 미국에서는 사이드미러를 접는 기능은 필요 없었기 때문.

이로 인해 좁은 공간을 비집고 주차해야 하는 한국 소비자들 중 “7,000만 원짜리 프리미엄 SUV가 전동 접이 기능도 없다는 말인가”라며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닛산은 한국의 현실과 기호를 감안해 FX의 ‘겉옷’과 ‘속옷’을 모두 갈아입히는 조치를 단행했다. 닛산은 FX 시리즈에 한층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얹고, 한국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편의장비도 추가했다. 여기에 더욱 역동적이면서도 대담한 내외관 디자인 등을 적용해 ‘2007년형 인피니티 FX 마이너체인지 모델’을 새롭게 내놨다.

2007년형 The new Infiniti FX35는 기존의 후방 센서에 7인치 리어 뷰 모니터를 더해 편의성과 안전성을 함께 높였다.

200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후 북미에서 성공적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Infiniti FX는 2005년 서울 모터쇼에서 기자단이 선정한 최고의 크로스 오버 차량으로 뽑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닛산의 변화 주도한 ‘시로 나카무라’

고리타분한 이미지 탈피…“닛산 돌풍의 힘은 획기적 디자인”

픽업 트럭의 이미지였던 닛산의 변화는 닛산의 CEO 카를로스 곤이 발굴해 낸 ‘천재 디자이너’ 시로 나카무라에 힘입은 바 크다. 엔진을 중심에 놓고 고성능을 실현하는 데만 집착했던 닛산은 그가 합류한 후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다. 소비자들은 튀지 않으면서도 강한 정체성이 엿보이는 닛산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수석 디자이너인 나카무라는 1999년 곤 회장 취임 이듬해 닛산에 합류했다. 경차를 만드는 일본 이스즈 자동차에서 25년 동안 요직을 거친 그는 비히크로스(VehiCROSS)·제미니(Gemini) 등 획기적 디자인의 차를 만들어 냈다.

헤드헌터가 닛산에 그를 추천하자 카를로스 곤은 단번에 숨어 있던 인재라는 것을 직감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고리타분했던 닛산의 디자인과 조직은 나카무라가 부장에 취임하자마자 통합·일원화돼 일관성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유럽에 흩어져 있던 조직을 한데 묶어 신차를 위한 창조적 팀으로 변모시켰다.

현재 나카무라는 닛산 본사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수석부사장이면서 닛산디자인아메리카·닛산디자인유럽 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닛산의 글로벌 디자인 전략과 중장기 디자인 계획, 브랜드경영 등을 총괄한다.
월간중앙 정일환 기자(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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