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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기자의 톡톡토크] “영화속 캐릭터는 내 친구”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영화, 좋아하시나요? 아니, 가끔 보시나요?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나요? 삶이 고단하군요. 팍팍한 인생사 지루한 거, 맞죠? 영화 <스탠드 바이 미>에서는 이런 대사가 흐릅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다. 나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저와 ‘영화 읽어 주는 남자’ 이미도 씨를 만나 보시죠!


영화 번역에 관한 한 국내 1인자. 한국외국어대에서 스웨덴어 전공. 공군 장교 출신에 주민등록번호 1자로 시작하는 엄연한 남자인데, 이름 가운데 아름다울 ‘미(美)’자가 있다는 이유로 여자로 오인받고는 한다. 좌우명은 영화인답게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의 명언.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영화와 스키·등산·축구 등으로 현재를 즐기느라 아직 미혼.

이미도를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이미도가 누구야”라는 말을 꽤 들었다. 이런! 그래서 ‘번역-이미도’ 있잖아, 했더니 그제서야 ‘아~~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설명해도 “모르겠다”는 ‘우매한(?) 민중’도 있다.

“그게, 거시기 ‘이미레’의 언니냐?”

이쯤 되면 너무한 거다. “문화생활 좀 하시라”고 면박(?)을 줬다. 어지간한 영화 몇 편만 보았다면 충분히 기억함직한 이름 아닌가?

영화가 막 끝난 극장. 의자 깊숙이 몸을 맡기고 있자면 ‘번역 이미도’가 화면에 스친다. 길어야 1초 남짓. 독특한 이름 때문인지, 영화가 주는 여운이 길어서인지 그의 존재감은 꽤 묵직하다.

1990년대부터 히트한 어지간한 외화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가장 최근의 <뮌헨>을 비롯해 <아마겟돈><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인생은 아름다워><아메리칸 뷰티> 등이 대표작이다. 매년 한두 편씩 수입되는 애니메이션 또한 모두 그가 번역한 것이다.

‘출판사 사장님’으로 변신

‘외화 흥행 보증수표’인 이미도가 최근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개사전>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굳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선택한 것은 그가 직접 출판사를 차렸기 때문이다. 외화 번역가에서 ‘출판사 사장님’으로 변신(혹은 외도?)한 그를 만나러 간다.

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첫째, 그는 절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둘째, 미혼이다. 셋째, 집이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쓰레기장’ 사촌뻘쯤 된다. 그리고 전화받는 태도로 미뤄 대충 짐작하건대,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장난기가 뚝뚝 묻어났다.

괜찮은 시간을 물었더니 “아무 때나 다 괜찮다”고 한다. “다음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이틀 몽땅 스케줄을 비워 놓겠단다. 예스!

“저는 혼자 작업하니 누구랑 같이 밥 먹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우리 맛있는 것 먹으면서 얘기해요.”

그의 집이 역삼동 근처라고 하기에, 그 근처 한정식집을 예약하고 문자로 시간과 장소를 보냈다. 곧바로 문자가 휙 날아들었다.

“넵! 땡썰랏!”(‘Thank’s a lot’을 이렇게 표현했다.)

47세 ‘아저씨’의 언어 선택은 재기발랄 모드. 재미난 사람이라는 예감이었다. 이미 봄인 것 같은 2월 첫째 주 수요일, 한정식집 ‘바우고개’에서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에 꼭 맞춰 ‘히죽히죽’ 웃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개 인터뷰를 하면 최선을 다해 차려입고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 작자 대담하다. 아니, 다르다. 부스스한 곱슬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약간 늘어져 보이는 면 티셔츠와 빛 바랜 진 바지를 입고 떡하니 나타났다.

기자, 괜히 차려입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신발 벗는 데 하도 오래 걸리기에 슬쩍 봤더니 등산화다. 끈을 다 푸는 오랜 ‘작업’ 끝에 그가 방 안으로 올라섰다. 한 손에는 교보문고 쇼핑백, 다른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서.

그의 부산한 등장과 함께 방 분위기가 순식간에 확 바뀌었다. 가야금 소리가 고요히 흐르던 온돌방은 시끌벅적한 ‘주막’이 됐다.

“스타벅스에서 오는 길이에요. 마시다 남아서 ‘투고(to go)’해 달라고 했죠. 만약 여러 명이 ‘투고’해 달라고 했으면 ‘집단 투고’네요. 하하하!”

그는 순간순간 언어를 가지고 놀았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엉뚱하면서 익살맞은 ‘시트콤 속 캐릭터’랄까? 그만큼 ‘즐거운’ 사람이었다.

며칠 전 가수 김C의 <멋진 아침>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했는데, 앞으로 고정출연하기로 했다며 약간 들떠 있는 모습이다. <올드 앤 뉴>라는 꼭지에서 옛날 영화와 앞으로 개봉할 영화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는 개념이란다.

“어디에 고정적으로 얽매이는 것을 정말 못하는데, 김C가 매력 있더라고요. 뭐랄까, 진솔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같이 축구도 해 볼 생각이에요.”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전날 중계방송 결과를 두고 “이천수가 일을 냈다”며 “정말 멋있는 골”이라고 한참 칭찬했다.

“그 친구가 오른발로 프리킥을 정말 잘해요. 그리스가 얼마나 센 팀인지 아시죠?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팀인데. 제가 축구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공 안 차본 지 오래됐는데 한창때는 잘한다는 소리 들었어요….”(웃음)

축구뿐 아니라 스키도 전문가 수준이다. 한국산악스키회 회원으로 활동한 지 어언 20년.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해외 스키장을 순례하며 산악스키를 즐긴다. 운동이라면 뭐든지 자신 있다는 그에게 골프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골프에 빠져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빠져나온 상태라고.

오해 하나: “왜 이미도 혼자 독식하나?”

골프는 주로 영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학교 선후배, 거래처 사람들, 또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귐을 나눈 사람들, 특히 스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쳤다. 혼자 일하다 보면 외롭고 적적할 때가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어디를 가나 친구”란다.

“스타벅스를 가면 직원들이 다 친구고, TGIF(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식사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 직원들도 다 친구고, 가끔 바에 가서 앉아 있으면 바텐더가 친구죠.”

뭐니뭐니 해도 친구가 가장 많은 곳은 영화 속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굿 윌 헌팅><아메리칸 뷰티><인생은 아름다워> 등 영화 속 모든 캐릭터와 친구가 된다.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이었던 맷 데이먼과 저는 이렇게 나이 들어가지만, 맷 데이먼이 연기했던 그 주인공은 제 마음속에서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잖아요? 그 수많은 인물이 전부 제 친구들이에요.”(웃음)

아침 7시면 일어나 신문 3개를 들고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한다.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각종 지식을 얻는다. 호기심이 많다 보니 무엇을 해도 재미있다.

“영화에 소개되는 내용의 범위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중 하나의 분야를 파고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친숙할 수 있게끔 알아둬야 해요.”

신문을 읽은 뒤 그는 스타벅스에서 번역이나 집필작업을 한다. 다른 커피숍과 달리 인터넷 선을 꽂을 데가 많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업장에서도 그가 나타나면 일할 수 있게끔 배려해 준다고.

“한 번 앉으면 행여 누가 앉을까봐 꿋꿋이 앉아 있어요. 화장실 갈 때는 컴퓨터만 빼 가지고 가고요.”(웃음)

하루종일 죽치고 있으면서 커피는 몇 잔이나 마시는가 했더니 고작 두 잔이다. “너무한 것 같다”고 하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한다.

“그래서 제가 스타벅스 PR 많이 하잖아요. 여름에는 냉방 잘되고, 겨울에는 난방 잘되고, 찾기 쉬운 위치에 있으니 퀵 서비스받기도 쉽고, 인터뷰할 때 기자님들 찾아오시기도 쉽고, 편하고…. 또 책을 쓰거나 기획 단계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야 하는데, 언제나 물어볼 대상이 있잖아요? 해운대에 가끔 가는데, 거기서도 스타벅스에서 일해요.”

모 언론을 통해 그가 스타벅스 역삼점에서 일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곳에는 그를 찾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번역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직원들은 제가 불편해 할까봐 제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도 안 불편해요. 실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만나면 똑 부러지게 얘기해 주죠. 어디서 교육받으면 좋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데요?
“제 경우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방송국에서 자체 운영하는 영상교육원이 있어요. 주기적으로 분야별로 모집하죠. 그중 ‘영상번역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더빙 번역(성우들이 대사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다 보면 방송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고, 경력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면 영화사에 ‘노크’하고. 그런 것조차 모르시고 시작하려면 힘들죠.”

― 그렇게 길이 열려 있는데 왜 미도 씨밖에 안 보이죠?
“없지 않아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죠. 한 10명쯤 되는데…. 1년에 150편(영어권) 정도 들어오니 한 명당 15편 정도 한다고 보시면 돼요.”

― 항간에는 미도 씨 혼자 독식한다는 비판도 있던데요?
“그러게요. 본의 아니게 오해받는 것이 ‘이미도’가 회사냐고….(웃음) 왜 70~80%를 혼자 하느냐고 하는데, 사실은 거기서 0을 뺀 7~8%예요. 할리우드 영화만 보면 제가 하는 것이 1년에 15편에서 20편 정도거든요. 제가 초기부터 시작한데다 번역 실명제를 하고, 또 제가 번역한 영화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만큼 관객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죠. 제 독특한 이름도 한몫했을 거고.”

― ‘이 바닥’에서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어휴, 경쟁하면서 살 겨를이 어디 있어요? 번역할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취미생활 하고 즐겨야지…. 재미있게 살 시간도 부족한데요. 특정 번역가를 경쟁자로 염두에 두고 일하면 아마 지칠 걸요? 각자 번역하는 스타일이 있고, 또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래선이 있어요. 저는 영화가 아무리 탐나도 저와 연결된 회사들 밖으로는 눈길을 안 줘요. 그래야 저와 연결된 회사와의 신뢰가 이어질 수 있거든요.”

오해 둘: “이미도가 재벌이라며?”

― 외화 흥행 순위 1위부터 20위까지는 이미도 씨가 번역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나요?
“그런 것은 아녜요. 번역하고 보니 꼬박꼬박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더라고요. 아, 이런 것은 있죠. 여러 편 들어오면 이것을 하기 위해 다른 것을 피해갈 수밖에 없는 거요. 거래선이 닿아 있는 곳은 먼저 챙겨야 하니까요.”

그는 한 번 계약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월트디즈니와 CJ엔터테인먼트는 번역길의 오랜 동반자다.

― 현재 번역 중인 영화는 뭔가요?
“지금은 <슈렉 3>를 준비 중이에요. 아직 준비 중이니 기대만 하고 있죠. 이번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여자 파트너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설레죠.”

― 그런 정보는 영화사에서 얻나요?
“네, 영화사에서 받기도 하고, 온라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외국 영화 사이트가 많이 있어요.”

― 번역하기 전에 그 분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나요?
“그럼요. <뷰티풀 마인드>의 경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이야기잖아요? 그 인물에 대한 기본 정보를 모르면 해석적 번역에 그칠 수 있어 책도 사 보고, 자료도 찾아봐요.”

번역에 선행하는 작업으로서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는 재미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 그는 토요일이면 늘 교보문고로 향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오는 각 신문의 북섹션에서 관심 있는 책을 표시해 뒀다 사서 읽는다.

본 작업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초 다툼이다.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주일, 길어야 열흘 정도. 흔히 번역가들은 영화를 돌려보면서 번역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 영화는 한 번밖에 볼 수 없단다. 영화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영화사에서 한 번 볼 때 소리를 녹음해 번역한다고. 그만큼 영화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

번역한 원고를 넘겼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 심의받고, 수입해도 좋다는 판정을 받으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이 등급을 정해 준다. 그 뒤로 두 달 정도의 영화 마케팅 기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수정하고 감수하는 작업을 거친다. 따지고 보면 번역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보다 그 다음 단계에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자막을 넣고 나면 언론 시사회, 일반 시사회 등 시사회를 다양하게 하는데, 이미도는 항상 그 현장과 함께한다. 거기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아, 저곳은 다르게 표현하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마음에 들도록 고치고 또 다듬는다. 그는 프로다.

― 대개 영화 한 편을 번역하면 얼마나 받나요?
“600만 원도 받고 500만 원도 받고, 대중없어요. 영화 스케일이나 영화사에 따라 달라져요. 하한선 200만 원도 받아봤어요. 그런데 사실 영화를 통해 제가 만끽하는 재미나 즐거움을 감안하면 번역료가 높고 낮은 것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즐겁게 일하면 지치지도, 스트레스도 안 받아요.”

― 혹자는 이미도 씨가 재벌 됐을 거라는 말도 하던데요?(웃음)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솔직히 번역계 여건이 열악하거든요. 일단 ‘번역’이라고 하면 홀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과거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모든 출판사가 달려들어 출판 과열 경쟁을 벌였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좋은 번역가를 키우는 데는 소홀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목말라 하면서도 그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벌었는지는 객관적·주관적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는 얼마 벌었느냐는 질문을 뭉뚱그리며 번역환경이 열악한 것에 대해 한참 동안 열을 올렸다. 번역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꾸 하향조정하며 ‘제살깎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실력 있는 분들이 진출하겠어요? 이 악물고 해보겠다고 입문한 사람들도 지쳐 손을 놓는 실정이에요. 더 좋은 번역이 나오기 힘들죠. 저는 번역이 나름대로 대우를 받는 데 일정 부분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입문했을 때 편당 60만 원이었거든요.”

― DVD나 비디오 번역도 함께 맡나요?
“아뇨. 영화사와 비디오·DVD 회사가 같을 경우에는 제 대본을 가져다 썼을지 모르지만, 그쪽은 그쪽에만 전문으로 종사하는 분이 계신 걸요.”

오해 셋: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거야?”

― 이미도 씨가 번역한 것을 DVD로 봤을 때 번역이 어떻던가요?
“어찌 보면 DVD 자막 내용이 더 충실하고 상세할 수 있어요. 훨씬 더 많은 자막이 들어가거든요. 극장에서는 ‘돌려보기’가 안 되니 최대한 짧게 의미를 전달해야 해요. 반복적으로 대사를 놓치면 영화 보는 재미가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미국 영화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대본 자체는 전체 대사의 약 80% 정도밖에 안 담겨 있다. “그 범위 내에서 의미와 재미를 살려 주기 바란다”는 의미다. 이것은 한국영화가 외국으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 혹시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영화 번역작업은 안 하시나요?
“제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것은 할 수 있어요. 프랑스에 수출됐던 <유리>라는 영화와 <개 같은 날의 오후>를 했어요. 그 언어권의 원어민과 공동작업을 했죠. 그 문화권·언어권 사람들이 영화를 올곧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으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 왜 영화 속 욕은 죄다 “오, 맙소사” “빌어먹을”인가요?
“심의 때문이에요. 관객을 한 명이라도 늘려 보고 싶은 심정 아세요? 미국영화에서는 성에 관한 농담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 같이 보는 영화관에서 분위기가 좀 싸할 거예요. <굿 윌 헌팅>이 대표적인데, 내용이 정말 좋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게 R등급(보호자 없는 17세 이하 관람불가)을 받았거든요. 청소년들이 봐도 참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불가피하게 오역한 경우가 있었죠.”

― 그래서 해적판 자막이 재밌다고들 하는군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마치 벽에 낙서해 놓은 것같이 여과되지 않은 말이니까요. 낯뜨거우면서도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낄 수 있죠. 그런 자막을 극장 앞에서 보면 불쾌감이 느껴질걸요?”

이쯤 해서 물었다. 중국영화인 <연인>, 일본 애니메이션인 <샘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탈리아어인 <인생은 아름다워> 등과 같은 영화 번역은 어떻게 한 것인지….

―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건가요?
“하하, 저는 그쪽 언어들 하나도 몰라요. 항상 공동작업을 했고, 항상 자막에 그분들 이름과 함께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기억을 못해서 그렇죠. 제가 영어 대본을 갖고 번역할 경우 중역을 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연인>에서 ‘20만 대군’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어 대본에는 ‘many soldiers’라고 나와요. 만약 중국어를 듣는 사람들은 ‘아이~ 씨, 20만인데’라고 하겠죠. 그걸 저 혼자 번역하면 ‘갓 쓰고 할리데이비슨 타는 꼴’이죠.”

세르반테스가 말했다. “번역은 뒤집어놓은 양탄자와 같다”고. 멀리서 보면 앞면이나 뒷면이나 화려하고 멋있지만 다가가면 질감이나 색상 모두 다르다. 그래서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감히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번역이 인간에게 주는 형벌로서의 직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어요. 번역이 갖고 있는 한계를 알기 때문에, 완전한 번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 완전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만, 번역을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다가가면 다가설수록 번역이 두려워졌다. 외줄타기를 자꾸 하다 보니 하나라도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더 두려웠다고. ‘쟁이’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뭔지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

창작 갈증, 번역 염증

문득 궁금했다. 영화관에서 ‘번역-이미도’라는 자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어휴, 저는 도저히 볼 수 없어요. 언제쯤 제 이름이 나올지 알잖아요? 그때쯤 되면 고개가 ‘이렇~게’ 돼요.”

그는 자신의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 옆으로 돌리는 시늉을 했다. 10년 넘게 번역일을 하면서 그는 한 번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번역가는 병풍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주인공은 항상 따로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미도가 회사 이름이라는 둥, 여자라는 둥 오해를 사기도 했다.

늘 창작 욕구에 시달렸다. 영화 포스터 카피와 광고 카피를 썼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창작에 대한 갈증이 무르익기도 했고…. 번역에 대한 염증도 있었어요. 그만두고 싶었으니까….”

잘나가는 번역가의 입에서 “그만두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짠하다. 저마다 남모를 고민을 안고 사는구나 싶어서.

“시달림…. 스케줄에 시달렸고,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없고 담아낼 수 없다는 묘한 죄책감 같은 거…. 번역으로 계속 갈 수 있겠지만, 정말 번역으로만 내 인생을 끝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어요. 이것은 ‘대리인생’이잖아요. 물론 재미있고 만족스러웠지만. 그러면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KBS <대한민국 1교시>에 출연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와 당시 이지영의 <굿모닝 팝스>에서 ‘이미도의 Made in Hollywood’를 담당하면서 <이미도의 등푸른 활어영어>를 구상했다.

예전에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영혜 사장이 관심을 갖고 “책 한번 써 보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2004년 봄, 기획안을 들고 이영혜 사장을 찾아갔고, 2004년 11월 책이 나왔다. 원고지 1,000장을 단 15일 만에 끝냈다.

“아침부터 스타벅스에 딱 자리 잡고 앉아서 ‘선생님, 오늘 100매 진도!’ ‘오늘 200매 진도!’ ‘아~ 요청하신 원고량을 넘었는데 어떡하죠?’ 이렇게 써댔어요.”

쉽게 5만 권이 팔려나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박’이었다. 그즈음 또 다른 책의 기획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아예 ‘물고기도서관(FISH)’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패션의 F와 아이디어의 I와 스토리의 S, 그리고 감동을 준다는 ‘Heart’에서 H를 땄어요.”

농담 삼아 스스로 ‘대표이사 사원’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책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요즘에는 최근 펴낸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개사전>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 됐다. 책이 나온 지 2주 정도 됐는데 현재 교보문고 어학부문 6위에 올라 있단다. 이쯤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사재기 좀 하지 맙시다. 공정한 게임을 하자고요.”

‘초짜 1인 출판사 사장’의 볼멘 목소리다. 확인은 안 되겠지만 딱 보면 사재기인지 아닌지 알겠다고.

“이번 여름 즈음에 에세이가 나올 것 같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보고 싶은 책도 있어요.”

― 예전에 시나리오도 썼다면서요?
“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제가 책 쓴다고 했더니 시나리오 쓰는 줄 아시더라고요. <텔미썸씽>이 나오기 전에 습작 수준으로 한 번 써본 적이 있는데, 내용이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냥 묵혔고, ‘트리트먼트’와 ‘시놉시스’ 같은 것들은 의견을 낸 적이 좀 있어요.”

― 한국영화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그럼요. 많이 봐요. 최근 <미녀는 괴로워>를 봤어요. 트렌드를 잘 잡은 것 같더라고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울었어요.”

― 출판 현장보다 영화 현장이 더 친숙할 것 같은데….
“그렇죠. 그래서 ‘물고기도서관’ 등록할 때 출판 외 영화 쪽으로도 범위를 넓게 해 놨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되면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을 보는 눈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1인 다역, 딱 체질이야!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방송 출연 요청과 대학·기업 등의 강연 요청이 밀려든다. 하지만 고정적으로 묶이는 것을 싫어하는 이 남자, 번번이 정중하게 거절한다. 번역은 순발력과 기동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가 손에 떨어지는 순간 투신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대신 특강 형식의 강의는 기쁜 마음으로 간다. 특히 지방 강연일 경우 소풍 가는 기분이란다. 진짜 신나는 얼굴이다. 표정이 살아 있다. 말발도 세고 ‘비주얼’도 훌륭하다.

― 말을 잘해서 강의나 방송 체질일 것 같네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잘한다기보다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어요.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 책을 보니 이금희 씨가 감수를 맡았던데요. 친분이 있나 봐요?
“어휴, 저 그것 때문에 (이금희 씨한테) 무지 혼났어요. 제 책이 대화체 형식으로 돼 있기 때문에 턱턱 걸리는 게 있으면 눈여겨봐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의견을 내주시니 너무 고마워 이름을 올렸는데, 자기가 원고나 책을 감수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면서…. 친분이 있는데 그로 인해 서먹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죄송하지만 고마운 마음이야 어쩌겠어요?”

― 포스터 카피 쓰기, 영화 제작, 번역, 출판, 강의…. 이 중 제일 재미있는 것은 뭐예요?
“책 쓰고, 책 만드는 거요. 책잡히기 싫으니까.”(웃음)

수시로 언어로 장난치는 그는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돌발질문’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새로운 10만 원권에 어떤 그림을 넣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산삼이라고 했어요.”(웃음)

아니, 10만 원짜리에 웬 뚱딴지같은 산삼인가 했더니 10만 원의 애칭을 ‘심마니’라고 부른다면 심마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산삼 아니겠느냐는 것. 듣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말이 된다’ 싶다.

천부적 언어 감각은 미군부대 통역병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농고를 중퇴한 아버지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하던 시절 영어와 스페인어를 독학했다. 도서관 사서를 하면서 항상 책을 가까이했던 아버지는 언어적 감각과 문학적 감각을 두루 갖춘 분이었다고.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미나리>라는 카바레 간판이 보이면 “<미나리에서 만나리>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부대에서 나온 뒤로는 외제 카메라를 사다 파는 일을 했다. 압류한 밀수품이 공매에 부쳐질 때 사 오는 일이었는데, 상업이 적성에 안 맞았는지 신경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다 그만두셨다. 젊은 시절부터 이민을 준비했던 부모님은 호주에 살고 계신다. 여기서 이미도의 입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리집의 호주(호주)니까 호주에 계시죠.”(웃음)

‘미도’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길을 걸으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었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가라’는 의미도 더불어 담았다. 3남1녀인데 다른 형제들 이름은 미국과 아무 상관이 없단다.

“제가 첫 ‘빠따’가 되는 바람에….(웃음) 혹시 <올드보이> 보셨어요? 거기 여주인공 이름이 ‘미도’잖아요? 제가 빌려준 이름이에요.”

― 분위기 묘한 캐릭터였죠?(웃음) 중성적이기도 하고….
“맞아요. 시나리오 마지막 단계에서 박찬욱 감독님이 여주인공이 중성적 이미지라고 하면서 ‘미도’라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그러면서 저를 떠올리셨대요. 마침 그 영화 프로듀서가 저를 아는 분이었어요. 저는 물론 ‘오케이’였죠. ‘미도가 나만 있나? 대신 무대인사할 때 같이 좀 올라가자’고 했는데 그냥 농담처럼 끝났어요. 되게 재미있는 깜짝 이벤트가 될 것 같았는데….”

― 실제로 중성적 캐릭터인가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 중성적이라기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촘촘히 얽혀 있는 것 같은데요?
“아, 맞아요. 정확히 보셨어요. 제가 축구 같은 것을 할 때는 굉장히 저돌적이에요. 공을 차고 나면 공은 안 들어가도 사람은 골대 안에 들어가 있거든요.(웃음) 공군 장교로 근무할 때도 동기들이 그랬어요. 만약 말뚝 박는 동기가 나온다면 유일하게 미도일 거라고. 그런데 지금 하는 작업들은 상당히 감성적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제 혈액형을 단번에 못 알아맞혀요. 처음에는 O형으로 시작했다 AB형, 그 다음에는 B형….”

실은 A형이다. “추위, 더위는 안 타도 부끄러움은 좀 탄다”고 수줍게 웃는다.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개구쟁이였다. 풀어놓은 나귀처럼.

어려서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영화관은 그에게 꿈과 같은 놀이터였다.

“그때는 정이 넘쳤어요. ‘기도’라는 분한테 ‘아저씨, 한 번만 보여주세요’ 하면 그냥 넣어 주셨어요. 정이 넘쳤죠. 생판 모르는 아저씨 손을 잡고 따라가기도 하고…. 본 영화 또 보고 <대부> 같은 영화는 개봉한 날 하루 종일 봤어요.”

<시네마천국>의 토토

한 번은 극장 개구멍으로 들어가다 뒷간에 빠지는 바람에 다리가 핫도그처럼 반죽된 기억도 있다.

―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생각나요.
“하하, 그런 면이 있죠. ‘할리우드 키드’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 많고. 어릴 적에는 눈이 지금보다 두 배로 컸거든요. 가끔 제 스스로도 ‘저-기’ 파키스탄 쪽이라고 하기도 하고, ‘조금 탈색된 인도인’쯤으로 소개해요.”

영화광이었던 ‘토토’. 정작 대학 때는 스웨덴어를 전공했다. 약간 뜬금없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너 영어 못하니?’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스웨덴이 복지가 잘돼 있으니 이민을 생각해 보자고요. 그래서 배우게 됐는데, 정작 스웨덴은 접으시고 미국 쪽으로 바꿨다 캐나다로 쭉 준비하시다 결국은 호주로 가셨죠.”

―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공부했던데요?
“당시 광고 쪽이 굉장히 유망한 직업이었어요. 시장이 점점 커지니까요. 그런데 원래 1차적 목적이 이민이었기 때문에 끝마치지는 못했어요. 그때 공부했던 것이 영화 일 하면서 카피 쓰는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영화 예고편 같은 경우는 카피라이터 감각을 필요로 하거든요.”

― 어떤 카피들을 썼죠?
“<아름다운 비행>이라는 영화에서는 ‘때때로 사랑은 기적처럼 아름다운 배경이며 용기 있는 모험입니다’라고 썼고, <굿 윌 헌팅>은 ‘그의 인생, 처음 등대를 만난다’ 같은 것이 있어요. 그 밖에도 <더 록>의 ‘전국 극장가 초토화 준비 완료’, <진주만>의 ‘전 세계가 숨죽여 기다렸던 사상 최대 전투 액션 블록버스터’, <아마겟돈>의 ‘누가 그들의 명성에 도전할 것인가’ 등이 그의 카피다.

― 영상 번역은 ‘얼떨결에’ 시작했다면서요?
“아는 형이 미국에서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판권을 따서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토스’받아 영화 소개를 맡았죠. 보도자료도 만들고 마케팅도 하고. 그러다 형이 ‘언어도 되는데 직접 번역해 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한번 해 볼까 해서 선배들이 했던 대본을 구해 글자 수 맞추는 것부터 익혔다. 순전히 독학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란다. 영화를 제일 먼저 보고, 항상 새로운 영화를 보니 매너리즘에 안 빠지고. 영화 속 캐릭터와 친구도 되고. 수많은 영화 대사 중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브루스 올마이티>에 나오는 대사다.

“지역방송 리포터인 짐 캐리가 앵커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데, 그 화살을 창조주한테 돌리잖아요? 그때 짐 캐리가 ‘왜 나한테는 기적이 안 일어나느냐’고 하거든요. 그때 창조주 모건 프리먼이 그러죠. ‘You wanna see a miracle? Be the miracle!(기적을 보고 싶나? 스스로 노력해서 달라지게. 그게 기적이야!)” 스스로 노력해서 이루라는 것이죠.”

― 저는 <굿 윌 헌팅>의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를 가장 좋아해요.
“아…. 이번 여름에 내려는 에세이 제목으로 쓸까 생각 중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다 아픔이 있어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말 못하는 일들을 안고 살죠. 그럴 때 누군가가 ‘너의 잘못이 아냐’ 하고 위로해 주고 다가온다는 것처럼 따뜻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대사에 공감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탠드 바이 미>를 이야기한다. 원작인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첫 문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단다.

“가장 고백하기 힘든 사연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The most important things are the hardest things to say).”

이 말이 암시하듯 네 소년이 비밀처럼 간직했던 사연들이 그들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성장영화다. 그는 아름다운 ‘길’이 나오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단다. 길에서 시작해서 길로 끝난다.

“가장 말하기 힘든 사연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 살면서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에게는 첫사랑이 그렇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이니, 그는 스물여섯, 그녀는 스물네 살이었다. 결혼을 마음먹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었다.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야 만날 수 있었어요. 주말마다 쇼핑하러 마트에 갔는데, 그 사람이 부모님 슈퍼마켓의 일을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들어 슈퍼마켓 명함을 들고 나와 연락했어요.”

보통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할 쇼핑이었지만 매주 쇼핑을 갔다. 하지만 워낙 교포사회가 좁은데다 부모님이 항상 옆에 계셔서 편지로밖에 연락하지 못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밖에서 데이트했던 기억이 없다고.

“두어 달 정도 됐을 때 집에 연락을 했어요. 혹시 캐나다 가실 때 들렀다 가시면 안 되겠느냐고요. 양쪽 부모님 상견례를 했는데 서로 대화가 잘 안 풀렸나 봐요. 그분과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락이 끊어졌죠. 그 뒤로 몇 번 연락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행복하셨으면 해요.”

― 다시 만날 생각이 있나요?
“얼추 20년이 됐네요. 만나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결혼하셔서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괜히 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 우연히 마주쳤는데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농담처럼 그러죠. 에 의뢰해 보라고. 그냥 씽긋 웃고 말아요.”

문득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이 떠올랐다. 살면서 아사코와 세 번을 마주치는데 세 번째 만남 뒤에 생각한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피천득 시인이 아사코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심정이 그와 같은 것이 아닐는지.

“한번 수소문해서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 해 본 적 있어요.”

언어를 가지고 노는 마법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 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 잠시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마침 후식까지 끝낸 참이어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정신없기로 소문난 그의 집이 다음 행선지다. “신발 안 벗어도 된다”는 그의 말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대문을 여는 순간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방바닥이 아예 보이지 않는데다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아예 없다. 방바닥부터 약 30cm는 족히 쌓인 신문과 잡지, 쓰레기 등으로 방바닥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밖에 글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표현력의 한계에 부닥쳤다.

침대방도 딱 그가 누울 만큼만 빼고는 어디 편안히 앉을 구석도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DVD와 책이 온 사방에 널려 있다. 꽤 커다란 냉장고가 있기에 ‘그래도 밥은 해 먹나 보다’ 했더니 “언제 열어 봤는지 기억이 없다”면서 “꽉 채워져 있기는 한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이쯤 되면 정말이지 ‘진정한 폐인’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일에서는 결벽증이라 할 만큼 치밀함을 보인다. 극과 극이 혼재하는 이 사내, 폐인이기 전에 ‘기인’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달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그는 <돈 후앙>을 틀었다. 거기에 나오는 조니 뎁이 자신을 닮았다고 ‘주장’하며…. 사진촬영 중에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틈만 나면 장난치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때로 시무룩한 척 입을 삐죽 내밀기도 했다.

집에서의 촬영을 끝내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친구 대하듯 그를 반긴다. 그가 커피를 쐈다. “세상에 별별 다방 다 있지만, 그중에서도 ‘별다방’을 제일 좋아한다”는 그는 집보다 스타벅스에서 더 편안해 보였다.

가장 말하기 힘든 사연

목 좋은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그 자리가 비자마자 꿰차고 앉아 기자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태진아의 <옥경이> ‘가사 원칙’에 입각해 상대를 파악해 가는 재주가 탁월했다. 영화를 보면 유난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그가 딱 그랬다.

“결국 인생은 혼자가 아녜요. 상대가 연인이 됐건, 선생님이건, 제자건, 상사건 자기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가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잖아요? 저도 남은 생을 그렇게 좋은 사람들, 이제껏 맺어온 인연을 소중히 하며 살고 싶어요.”

어느새 해가 졌다. 무슨 일이건 딱 저녁식사 전까지만 하는 것이 원칙인 이미도. 종일 시간을 빼앗은 것 같은 미안함을 전했더니 “오늘은 기자님을 위해 비워둔 날”이라며 저녁 식사도 하잖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 사람과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면서.

“저녁식사 이후 시간을 고스란히 즐겨야 그 다음날 활기차게 일어나서 일하죠. 휘영청 밝은 시간에만 일하고, 휘영청 달이 뜨면 술 먹고 휘청휘청…. 씨익~.”

그의 단골이라는 강남역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닭튀김·골뱅이·해물탕을 안주 겸 식사 삼아 먹어치웠다. “맥주는 무한정 마신다”는 그는 겁나게 빠른 속도로 맥주잔을 비워냈다. 단골집이라더니, 푸근하게 생긴 사장님이 연어 뱃살을 서비스로 내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문득, 저렇게 살고팠다. 달이 휘영청 떴다.

호기심 많고, 무슨 일이든 재미있어야 하고, 항상 길 떠나는 은발 소년 이미도. 그는 다시 또 보고 싶은 영화처럼 그렇게 남았다.

임지은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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