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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숭배'일본은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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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을 떠난 일본 기업인을 기리는 행사에 전직 총리 둘을 포함한 6500명이 몰렸다. 올 초 타계한 '라면의 아버지'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사진) 전 닛신(日淸)식품 창업자 겸 회장의 추모행사였다. 사업을 일궈 국가 경제에 기여한 원로 기업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존경이 배어나는 자리였다.

추모 행사는 지난달 27일 오사카의 교세라돔 야구장에서 열렸다. 34명의 스님이 추모재(齋)를 이끌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등 두 전직 총리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탔던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도 영상 추모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도 회장은 2005년 '우주 비행사를 위한 컵라면'을 만들어 그에게 보냈다. 노구치는 그해 7월 그 라면을 안고 디스커버리호에 올랐다. 추모 행사의 제단도 우주공간을 이미지화했다. 안도 회장을 우주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식품 문화를 개척했고, 전후 일본의 부흥을 주도한 창의적 기업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5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즉석 라면을 개발했다. 첫 상품의 이름은 '치킨라면'이었다. 71년에는 조리기구 없이 끓는 물만 부어 먹는 컵라면을 내놓았다. 컵라면은 라면이라는 식품을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 사회에 널리 알린 그의 대표 상품으로 평가받았다. 95세였던 지난해까지 경영 일선에서 일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사업에 실패해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오사카 시민들이 재래식 라면을 먹기 위해 포장마차 앞에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즉석 라면 개발에 나섰다. 몇 년간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그는 아내가 만든 튀김 요리에 착안했다. 여기서 '순간 유열(油熱)건조법'을 고안해 냈다. 오래 보존할 수 있고, 끓는 물만 있으면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상품화에 성공한 것이다. 고인의 삶은 실패와 도전과 열정으로 이어진 드라마였다. 1910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33년 일본으로 건너온 뒤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경제학과를 수료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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