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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② 그와의 첫 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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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와의 첫 조우

“뭘 찰관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이강은 깜짝 놀랐다. 처음 방문한 이 도시에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목소리가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 누군가 서 있었다.

“혹시 절 아세요?”
“지금 알아요.”
“아,예…”
“근데 지금 뭘 찰관하고 있는 거예요?”
“찰관?”
“찰관… 찰관이 아닌가. 뭘 열심히 살펴보는 거…”
“아하, 관찰.”
“그래, 맞아요. 관찰이야, 관찰. 내가 아직 말이 서툴러서.”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동안 이강은 그에게서 여느 사람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베일에 쌓인 듯한 뭔가 신비한 구석이 느껴졌다.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순 없어도 분명히 그랬다.

무엇보다 그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었다. 어리게 보면 20대 초반부터 많게 보면 30대 후반까지 거의 20년의 세월을 한 얼굴에 담고 있는 듯했다. 남자임은 분명했지만 인종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외모는 동양인과 서양인을 잘 조화시켜 놓은 모습이었다. 피부는 옅은 갈색이었고 키는 177cm쯤 돼 보였다. 옷은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회색 바탕에 노란 줄이 세로로 그어진 남방을 입고, 바지는 양 옆에 주머니가 달린 베이지 색이었다. 신발은 옅은 초록색 캐주얼화를 신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헤어스타일이었다. 갈색에 숱은 많았고 다소 거칠게 커트한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렸다.

“혹시 이런 녀석들 본 적 있어요? 소라게들인데, 얼마나 앙증맞고 바삐 움직이는지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작은 조개들은 처음 봐요. 우리 마을엔 대체로 아주 큰 놈들이 많죠. 행동은 아주 느리고요. 그래서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쉽게 구분을 못할 때가 많답니다.”

“그렇군요. 이 녀석들은 작은 대신 빠르고, 거기엔 큰 대신 느리다, 이거죠?”

“작은 녀석들이 느리면 다른 놈들에게 잡혀 먹기 십상이지요. 우주를 관장하는 창조주는 모든 생물에 다 필요한 기능을 준 것 같아요.”

“전, 한국이란 나라에서 회의 참석 차 여기 왔는데 혹시 여행 오신 건가요?”

“네, 나는 아주 먼 곳에서 살아요.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 작고 조용한 마을이죠.”

“음, 그렇구나…”

“우리 마을엔 소금이 많아요. 그래서 이 바닷가처럼 하얀 곳이 많죠. 어떤 곳은 얼음만큼이나 딱딱하고 어떤 곳은 솜처럼 부드럽답니다.”

그 순간 이강은 우주의 어느 별은 염화나트륨(NaCl ), 다시 말해 거의 소금덩어리로 구성돼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가 ‘어린 왕자’의 별나라에서 온 또 다른 왕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더 묻지는 않았다.‘어린 왕자’라는 책을 아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강은 자신의 육감이 매우 활발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아주 좋을 뿐이었다.

“솜처럼 부드럽다고요? 정말 신비하겠다.”

“난 이곳이 더 신비로운 걸요. 누구나 가보지 않은 곳을 동경하게 마련이지요. 모든 사물은 처음엔 신비롭다가 친해지거나 익숙해지면 점점 그런 기분이 줄어들죠. 그런 점에서 보면 익숙함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낯섦과 새로운 신비로 일상의 무료함을 덜어내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은 차분하면서도 조리있었다.

#4‘찰관’이라는 단어를 배우다

2차 세계대전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을 때 생텍쥐페리라는 프랑스 작가가 ‘어린 왕자’를 지구로 보냈다. 소설‘어린 왕자’는 1943년 미국 뉴욕에서 첫 출간 됐다. 그러나 당시는 다들 핏발 선 눈으로 상대를 겨누고, 약한 자는 도망가기에 바빠 그 책에 눈길을 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남긴 피냄새가 걷히고 있던 1946년 4월 그 책은 작가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다시 출판됐다. 이것이‘어린 왕자’의 진짜 탄생이다. ‘어린 왕자’의 몇 주년 행사는 대부분 46년을 기준으로 한다.

학창 시절 이강은 그 소설을 읽으며 재주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이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상상력과 글재주를 전쟁에 찌든 영혼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믿었다.

이강은 아랍의 바닷가에서 만난 그가 ‘어린 왕자’의 탄생 60주년이 임박했음을 알리려고 지구에 왔고, 자신이 너무나도 운 좋게 그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분명 처음 만났지만 쉽게 서먹서먹함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서로 잘 통한다는 느낌이 오갔기 때문이다. ‘찰관’이라는 단어에도 금세 익숙해졌다. 이강은 그쪽의 바다는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지금 우리가 눈 앞에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언제나 ‘우리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이강은 그곳엔 아직 국가나 정부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사회가 자그마해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가 나름대로 추측했다.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누다 그는 이강에게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강은 그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텔레파시라던가, 정신적 교감이 오가는 것 같았다. 강한 그 느낌에 이강은 또 한번 놀랐다.

-내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긴 걸까.

이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놓았다. 터지지 않는 큰 풍선이 있다면 담아가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로 맑고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대학 시절 자주 가던 학교 앞 생맥주집이 생각났다.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통에 달린 꼭지를 틀면 끝도 없이 맥주가 나오곤 했다. 그런 통이 있으면 이 맑은 바다공기를 압축해 담아가고 싶었다. 이강은 그와의 소중한 만남을 기리기 위해 앞으로 ‘관찰’이라는 단어를 ‘찰관’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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