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이 정한 '규제 일몰제' 겨우 2%만 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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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규제를 줄이기 위해 1998년 도입한 '일몰제'가 유명무실하다. 일몰제는 규제에 존속 기한을 명시해 기한이 끝나면 해당 규제가 자연히 폐지되게 만든 제도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일몰제 도입 후 만들어진 2549건의 규제 가운데 존속 기한이 있는 것은 48건(1.9%)에 불과했다. 특히 주요 규제는 대부분 존속 기한이 없었다고 한다. 규제 건수도 2003년 7836건에서 지난해 8084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행정규제기본법은 '명백한 사유'가 없는 한 모든 규제에 존속 기한을 정하도록 했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 일몰제를 도입한 지 9년이 지나도록 '규제 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 환경은 세계 116위다. 규제가 많은 데다 모호해 한국 관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규제다.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하는 데 걸림돌로 여기는 것도 규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184억 달러에 달한 반면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112억 달러에 그쳤다.

그동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규제 완화의 기치를 내걸었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 이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4년 규제개혁기획단까지 만들며 의욕을 보였으나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긴 정권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와 같은 덩어리 규제를 '성역'으로 여기는데 기획단을 만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이 정부에서 공무원을 4만8000명이나 늘리면서 더 막강해진 관료 집단은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규제를 덧붙였다.

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풀릴 수 없다. 기업의 편에 서서 규제를 재검토해 보라.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는 즉각 폐지하는 게 맞다. 규제 일몰제도를 다시 살려내라. 정부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는 못할망정 뒷다리를 잡으며 투자와 일자리를 차버려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