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개편의 우려할 두 측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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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 개정 시안이 발표된 이후 연일 관련 학과목 교수·교사들의 찬반 논의가 열띠게 일고 있다.
21세기를 대비한 교육과정의 개편이라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지난 다섯차례의 개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교육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논의는 보다 진지해야 하고 의견수렴은 신중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논의의 시작단계에서부터 우리가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두가지 측면이 있음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 현상이 학과목 이기주의에 편승해 교육과정의 개편방향을 흐리게 하거나 집단적 힘의 과시를 통해 학과목의 존폐를 결정하려 드는 일일 것이다.
이미 개정시안 제1차 공청회 현장에서도 이런 현상의 조짐을 보인 바 있고 시간이 갈수록 통합되거나 존폐의 대상이 될 학과목 교수·교사들의 반응은 학과목 이기주의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이번 개정안에 나타난 통합 또는 폐지될 학과목으로 한문·국사·교련·국민윤리 등이 있고 새롭게 생겨날 학과목으로는 국민학교의 「생활예절」,중학교의 「생활관리」,고등학교의 「현대사회와 시민」「현대과학과 인간」 등이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제화·과학화·민주화라는 변화된 시대상황에서 조망할때 어떤 학과가 생겨나야 하고 어떤 학과가 이젠 타과목에 흡수되어도 무관하다는 기준이 생겨날 수 있게 끔 되어 있다.
그러나 교수·교사들이 학과목 이기주의에 편승할때 맹목적 주장과 집단적 이기주의에 사로 잡힐 수 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어떤 학과가 폐지되어야 하고 통합되어야 한다는 일도양단의 주장을 펼수도,펴서도 안된다고 본다. 다만 21세기를 맞는 새 시대의 새교육을 위해 개인적 이해를 떠나 교육자들이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내세워야 할 것인가 하는 교육자 본연의 자세를 취해 달라는 부탁이다.
두번째 우려와 경계의 대상은 교육과정 개편의 주체인 교육부와 교육과정연구위원회의 자세에 있다.
국제화·과학화·민주화라는 시대상황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한다는 원칙과 개편방향은 명분상 매우 타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명분을 현실화 시키는 구체안이 과연 현실성을 갖고 있는냐에 대한 자체 검증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다.
교육과정 개편은 입시제도와 새교과서,그리고 새 학과목을 가르칠 교사의 충원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계획안에 따르면 92년 6월에 개정안 확정,94년까지 교과서 개편,95년 새교육과정 적용이라는 지극히 짧은 일정표로 짜여 있다.
예컨대,새 학과목인 「현대사회와 시민」을 가르칠 교사가 없고 합당한 교과서를 그때까지 마련할 것인가도 의문이다. 급조된 교사,엉성한 교과서로 21세기의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당장의 걱정이고 뻔한 부실교육이 예상된다.
명분에 사로잡혀 현실성 없는 개정을 강행하거나 결단해 버린다면 개정 이전보다 못한 개악이 될 소지가 있음을 경각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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