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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네거티브 선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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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어린 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떼어 내며 숫자를 센다. 1, 2, 3…9, 10. 바로 이어 억센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10, 9, 8…2, 1, 0. 공포에 질린 소녀의 눈동자에 반사된 버섯구름이 화면을 덮어버린다….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악명을 떨친 '데이지 광고'다. 1964년 린든 존슨(민주)은 배리 골드워터(공화)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겁을 줬다. 존슨의 광고 책임자는 공화당 내 경쟁자들에게 감사했다. 64년 선거는 본선보다 공화당 내 경선이 더 치열했다. 핵전쟁 문제도 당내 경쟁자인 록펠러가 골드워터의 말꼬리를 잡아 "수소폭탄 발사 버튼이 있는 방에 있기를 원하는가"라고 대량 편지를 보내며 제기한 것이다.(캐슬린 홀 재미슨, '대통령 만들기')

네거티브 캠페인의 일인자는 리 애트워트다. 그가 아버지 부시를 당선시킨 88년 선거는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로 기록됐다. 민주당 마이클 듀커키스의 말을 왜곡하고 범죄자와 흑인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했다. 상대후보의 뒤를 샅샅이 캐내 이용했다. 92년 선거 때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가 대학 재학 중 징병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교관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고, 클린턴의 내연녀 플라워스가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도 그의 성과다.

한국 선거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폭로전이 이어진다. '구전홍보단'이 허위 사실을 조직적으로 퍼뜨린 사례도 있다. 이런 흑색선전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능력과 자질.도덕성 결여를 입증할 객관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정상적인 선거캠페인으로 인정된다.(김창남, '선거캠페인의 원리와 실행전략')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지도자로서 인사와 정책 판단, 위기 관리를 잘할 수 있는지를 판별할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교통사고도 스캔들 그 자체보다 그 사건에서 드러난 비겁함, 위기 관리 능력의 부족이 치명상을 입혔다. 사건 직후는 물론 10년이 지난 80년 다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을 때도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87년 게리 하트 상원의원을 주저앉힌 것도 스캔들보다 거짓말이다. 그는 혼외관계를 단호히 부인했으나 얼마 뒤 내연녀를 무릎에 앉힌 사진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책경쟁보다 흥미도 끈다. 그러나 양날의 칼이다. 입증이 안 되면 오히려 공격하던 사람을 베어 함께 망해 버릴 수도 있는.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