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성악 교수가 트로트 노래 … 화끈한 '꺾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나태송을 보며 "어딘가 낯이 익은데…"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저기, '번쩍맨' 아저씨 나왔다"하며 반가워했을지 모른다. 최근 수년간 EBS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딩동댕'에서 악당 번쩍맨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영화.드라마.뮤지컬.연극에서 어린이 프로그램까지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는 덕분에 인기 스타는 아니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영화 '구타유발자들'에서 엉큼하면서 비겁한 성악과 교수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난생 처음 남우조연상 후보(대한민국영화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고교 때는 목사님이 꿈이었어요. 교회에서 성극(聖劇)을 하다 연기에 관심을 갖고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들어갔죠. 대학 시절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고 이거다 싶어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연기뿐 아니라 다방면에 재능을 갖춘다면 언젠가 크게 쓸모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의 이력을 보면 '안 하는 일 없이 다한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다. 서울예술단과 서울뮤지컬단에서 연극.뮤지컬을 주로 하면서 '영원한 제국'(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95년) 등의 영화와 '천년지애'(2003년),'대장금'(2003~2004년) 등의 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연기 생활 틈틈이 단국대.백제대에서 뮤지컬과 성악을 가르치고, 요즘 단국대에서 국문학 박사과정도 밟고 있다. 현재는 뮤지컬 '아이 두, 아이 두'에서 남자 주인공 마이클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저는 장르를 가리거나 고급예술.대중문화 하는 식의 구분은 하지 않아요. 제 마음을 어떻게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요즘에는 오페라단이 뮤지컬 공연도 하고,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하면 성악 전공자가 많이 찾아와요. 그만큼 장르 간 벽이 많이 허물어졌죠."

따라서 그에겐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트로트를 부르느냐'는 선입견이 없었다. 실제로 10여 년 전 '복면달호'처럼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려고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당시 음반기획사에서 "음반을 내려면 5000만원이 필요한데 2000만원만 내라"고 해 거절하고 그냥 나왔다고 한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 트로트는 맛있고 구수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평소엔 트로트와 거리가 멀 것 같은 젊은 사람들도 노래방이나 술자리에서 곧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우리 정서에도 잘 맞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복면달호'에서 그가 맡은 나태송은 나훈아.태진아.송대관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트로트 가수왕이다. 자기가 최고라고 잘난 체하며 주인공 달호를 한없이 무시하지만 결국 달호에게 당하고 만다. 이렇게만 보면 다른 영화에도 흔히 나오는 악역이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나태송의 겉만 보면 악역이라고 하겠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죠. 아마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모든 열정을 불사르며 피나는 연습을 했을 겁니다. 음악의 깊이로는 달호에게 질 리가 없거든요. 시대가 원하는 인물이 나태송이 아니라 젊은 달호였다는 것이 그에겐 비극이었던 거죠."

노래 잘하는 연기자로 정평이 나있는 그지만 이번 영화에선 노래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트로트를 적당히 따라하기는 쉽지만 맛깔스럽게 부르기는 어려워요. 특히 '꺾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것만 봐도 결코 수준이 낮은 장르가 아니죠."

글 = 주정완 기자, 사진 = 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