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스프링캠프의 말 잔치

중앙일보

입력

메이저 리그 스프링캠프가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 스프링캠프는 한 해 농사의 시작 씨 를 뿌리는 봄입니다. 그래서 그 테마도 단연 '희망'입니다. 구단주에서부터 저 말 단의 이름없는 유니폼을 입고 캠프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녀야 하는 루키에 이르기 까지 기대와 꿈으로 가득 찹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또 다시 새 출발이고 또 다른 시작인데요.

몸은 조금 고달플지 몰라도 일 년 중 가장 편한 마음으 로 야구를 하고 땀을 흘리고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마 이맘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다못해 지난 가을을 꼴찌로 마감한 팀에 조차도 아직 가능성의 푸른 바다는 저 멀리서 손짓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때문일까요. 스프링캠프서 는 매일 '말의 성찬'이 차려집니다. 칭찬 일색 기대 만발 의욕의 언어들이 따듯한 봄 기운 속에 아지랑이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말에 프런트는 프 런트대로 감독은 감독대로 코치들은 코치들대로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모두 흠뻑 취해버리고 맙니다.

'지난 겨울 우리가 얼마나 전력 보강을 알차게 해놓 았는데요. 당연히 기대가 크지요' '저 선수요? 올해 제가 10승 보장합니다. 보장 하고 말구요' 심지어 '제 말이 틀리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내가 올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가 되는데 두고 보십시오. 구단이 시즌 내로 다년 계약을 제 시하나 안하나.'

스프링캠프에서 떠도는 말은 그렇게 '중독된 언어'이고 일방으로 '취해버린 말'이기에 위험성도 다분히 내포합니다. 두껑이 열리기 전까 지는 술병에 든 술이 쓰디 쓴 독주인지 달디 단 감로주인지 전혀 알 수 없듯이 말 입니다.

스프링캠프의 술병에 든 가장 독한 말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 게도 달착지근한 말입니다. 바로 립 서비스(Lip service)입니다.

안그래 도 첫 날부터 봇물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말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투 수들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뉴욕 신문들에 따르면 윌리 랜돌프 메 츠 감독은 "박찬호의 훈련 자세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투수 중에서 유일하게 칭 찬했다고 합니다. 조 메이든 데블레이스 감독은 아예 서재응을 제3 선발로 공표했 습니다. 또 이 팀의 앤드루 프리드먼 단장은 초청선수인 최희섭과 유제국에 대해 서 "결코 몸값이 싸서가 아니라 과거의 성적과 가능성을 보고 데려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일까요? 미안하 게도 아직은 '글쎄올시다'입니다.

박찬호와 계약하면서 "우리 팀에 와서 제3선발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던 오마 미나야 메츠 단장은 스프링캠프 도착 첫 일성으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FA시장에서 대어급 선수들을 놓쳤지만 아직 실탄은 충분하다. 트레이드를 통해 확정되지 않은 선발 세 자리를 보강하는 작업 을 계속 벌여 나가겠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립 서비스는 립 서비스대로 하면서 그 밑에선 오리처럼 끊임없이 물질을 하고 주판알을 튕기는 게 메이저리 그의 셈법인 것입니다.

'중독된 언어의 성찬'에 현혹될 필요도 없거니와 도취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듣기 좋으라 한 말이려니 하고 넘기면 족합니다. 한국 선수들 모두에게 이번 스프링캠프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에 더욱 그 렇습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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