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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짜리 PC

중앙일보

입력

인도의 수억 빈민 겨냥한 TV 겸용 초저가 컴퓨터 나왔다.

인도 남부 도시 첸나이의 초라한 주거지구. 재스민 꽃을 넣어 머리를 딴 얌전한 13세 소녀 헤마 말리니가 TV와 노바 넷TV라는 신기한 새 장치를 켠다. 이 넷TV에 TV와 키보드가 연결됐다.

몇 초 후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로고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TV가 PC로 바뀌었다. 엄마가 자랑스럽게 지켜볼 때 헤마는 백과사전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고 e-메일을 확인하며 구글을 검색, 닌텐도의 무료 마리오 형제 게임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찾았다.

어떤 TV에도 연결되는 넷TV가 성공하면 비슷한 장치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앞으로 10억여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게 될지 모른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라제시 자인(39)은 노바티움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첸나이에 본사를 둔 노바티움은 넷TV와 넷PC를 생산한다. 넷PC는 일반 컴퓨터 모니터를 사용하는 비슷한 제품이다.

둘 다 값싼 휴대전화 칩을 이용하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고성능 메모리, 기본 소프트웨어 꾸러미 없이 나온다. 때문에 보통 PC보다 값이 수백 달러 싸다. 대신 키보드·화면·USB 포트 두어 개 정도로 이뤄진다.

그리고 중앙 네트워크 서버를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고 데이터를 저장한다. 노바티움이 이미 시판 중인 넷PC는 가격이 100달러에 불과하다. 인도 중산층이 구매 가능한 수준이다. 자인은 가격이 곧 70달러로 떨어진다고 내다본다.

기업가·자선사업가, 그리고 중견 컴퓨터 회사들은 10년 가까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데스크톱 PC 가격을 인하하는 값싼 대안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 인텔은 에듀와이스 랩톱, AMD는 퍼스널 인터넷 커뮤니케이터, MS는 폰플러스를 선보였다.

MIT의 컴퓨터 권위자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칠드런스 머신(Children’s Machine)’을 개발했다. 지금은 XO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빈민에게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려는 최근의 시도 중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빈민에게 컴퓨터를 보급한다는 네그로폰테의 구상은 민간과 공공 자선사업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전제로 한다. 가격도 아직은 140달러 선으로 인도인에겐 너무 비싸다. 실제로 인도는 100만 대를 공급하겠다는 네그로폰테의 제의를 가격 때문에 거절했다. 그와는 달리 자인은 수익이 목적이다.

그리고 인도 사정에도 밝다. 인도가 아웃소싱의 메카로 떠오르지만 PC 판매는 휴대전화나 오토바이보다 훨씬 더 부진하다. 너무 비싸고 사용하기가 복잡하며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접근방식의 컴퓨터를 기다린다고 일부 전문가는 주장한다.

인터넷 연결의 핵심적 부분만 남겨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자인은 이 모두를 장기임대 계약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사용하기 편한 하드웨어, 인터넷 접속, 응용 프로그램, 기타 서비스를 빌려주고 한 달에 10달러를 받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오랜 숙원이었던, 디지털 격차를 좁히는 다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컴퓨터 이용 사고방식을 바꿀지도 모른다. 이 해법으로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들에 거대한 신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이는 인도에서 시작돼 다른 신흥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의 대형 컴퓨터 회사들은 이미 그런 가능성에 주목하는 중이다. 이 분야는 새 고객을 확보하려는 엄청난 경쟁의 영향으로 범세계적인 혁신의 표적이 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서구의 PC 세계도 큰 영향을 받기 쉽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인의 방식 또는 유사한 방식이 정착되면 기존의 PC는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마저 있다.

구글은 웹 구동 소프트웨어와 웹 기반 데이터 저장 방식을 추진 중이다. 그 영향으로 세계의 소프트웨어 생산업체(MS 포함)들도 이미 소프트웨어를 낱장으로 팔아 하드 드라이브에 설치하게 하는 사업방식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몇 년마다 PC의 성능을 향상시켜야 할 이유도 사라져 간다.

PC 판매가 둔화되자 하드웨어 업체들은 개도국을 미래의 수익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바티움이나 유사한 경쟁업체가 성공한다면 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델, 휼렛패커드, 컴팩 등의 회사들은 PC를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고 노바티움의 넷PC와 비슷한 개념의 장치에 집중해야 한다.

하드웨어 사업은 소멸될 듯하다. 네트워크, 응용 프로그램, 데이터 저장 등의 서비스 분야에서 수익이 생기게 된다. 지금도 이미 이런 요소들이 ‘컴퓨터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컴팩은 통신·케이블 업체인 컴캐스트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

자인은 그런 전면적인 변화를 끌어낼 특이한 촉매제다. 자인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처럼 호언장담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의 첫 번째 벤처기업 인디아월드가 성공해 1999년 1억 달러가 넘는 값에 팔았다. 하지만 생활방식은 백만장자보다 수도승에 가깝다.

저가의 컴퓨터 대체품을 처음 구상한 때는 2000년. 당시 그는 서구의 PC 가격하락 속도가 너무 완만해 인도 시장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중고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PC방을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던 중 오라클 최고경영자 엘리슨의 이른바 네트워크 컴퓨터 계획을 접했다.

그는 PC의 유지관리 비용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며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자신들의 네트워크 서버에 올리면 곧 수백만 달러를 절약하게 된다고 호언했다. 엘리슨의 구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서구 시장에는 PC 보유자가 이미 너무 많아 그런 변화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자인은 판단했다. 그 아이디어는 인도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인은 먼저 중소기업을 겨냥해 네트워크 기반 컴퓨팅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98년 설립한 넷코어 솔루션스에서 개발한 제품이었다(현재도 최고경영자다). 그러나 하드웨어 비용이 문제였다.

2003년 벵갈루루의 한 세미나에서 강연한 후 첸나이에 있는 인도공대(IIT)의 아쇼크 준준왈라 교수가 찾아왔다. 그는 MIT의 미디어 랩과 유사한 연구소 겸 창업 보육센터를 운영했다. “아까 강연 때 얘기한 장치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우리가 구축할 수 있다”고 준준왈라는 말했다.

몇 달 뒤 IIT의 준준왈라 연구팀은 ‘경량 클라이언트(thin client)’ 개념에 기초한 계획을 내놓았다. 서구에서는 오래 전에 일반화된 개념이지만 업무 목적으로만 활용됐다. 저가 마이크로칩(인텔이나 AMD의 표준 PC칩 제외)을 사용하고 하드 디스크, CD/DVD 드라이브 등의 비싸고 문제가 잘 발생하는 부품을 없애 키보드·화면·USB 포트만 남겨두는 방식이다.

일반 PC보다 관리하기 쉬워 경량 클라이언트 PC의 판매는 선진공업국에서 일반 PC의 판매가 정체됐을 때에도 연간 약 20%씩 증가했다. 준준왈라는 기존 PC를 토대로 거꾸로 줄여나가며 작업하지 않고 맨 처음부터 새로운 구조를 창안했다.

고가의 마이크로칩 대신 휴대전화의 내부 구조를 채택해 엄청난 규모의 경제효과로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 뛰어들었다. 2003년 자인과 준준왈라는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레이 스타타 회장과 함께 노바티움을 공동 설립, 가정용 시장에 경량 클라이언트 컴퓨터를 도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컴퓨터를 싸게 만드는 일은 하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인은 깨달았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기능도 갖춰야 했다. 외관과 기능이 PC와 비슷하고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연결 기능을 모두 갖추면서도 관리·구동이 편해야 했다.

2004년 인도에서 제작된 저렴한 포켓 PC 컴퓨터가 선보였지만 그런 제품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잠재적 구매자가 가졌던 컴퓨터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은 저가 또는 재래식 중고 데스크톱의 구입을 꺼렸다.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하고 바이러스도 막아야 하는 등 온갖 복잡한 문제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PC의 축소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자인은 말했다. 넷PC와 넷TV처럼 성능을 효율화하고 가격을 낮춘 완전히 새로운 장치가 돼야 한다. 이미 노바티움은 전력회사가 전기를 판매하듯 컴퓨터 기능을 판매하는 능력을 갖췄다.

인터넷 접속 등 모든 기능을 한 달 10달러 정도에 제공한다. 그리고 판매 대수가 100만 대에 달하면 넷TV 재료비가 35달러로 떨어지기 때문에 판매가도 70달러로 내려간다. 지난해 7월 노바티움은 첸나이에서 약 1500가구가 가입한 케이블 사업자와 함께 시범 상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100명이 이용했다. 3월 말에는 500명에 이를 전망이며 모두 한 달에 10달러 정도의 이용료를 내게 된다. 불과 250만 달러의 종자돈으로 출발한 노바티움은 직원이 60명에 불과하지만 많은 유력 기업이 주목한다.

한 가지 이유는 노바티움의 장치가 개방형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경량 클라이언트와 달리 노바티움의 장치는 크게 손대지 않고도 모든 네트워크 서버와 잘 맞아 돌아간다. MS나 선의 독점기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든, 리눅스 같은 기술공유형 업체의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든 상관 없다.

MS가 첸나이 시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유는 노바티움의 가입자 기반 지불방식에 있다. 대다수가 MS 제품의 불법 복제판을 이용하는 시장에서 수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MS·야후·AOL 등 미국의 일류 기업 경영자들이 첸나이를 방문, 넷PC와 노바 넷TV를 갖춘 가정을 돌아보면서 그 하드웨어 종량제 판매 모델이 가정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폈다.

오래전부터 ‘네트워크가 컴퓨터’라는 슬로건을 내건 네트워크 서버 대기업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이미 올 초부터 인도의 기업과 학교에 넷PC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에서만 향후 5년 사이 1억 대의 수요가 예상된다”고 자인은 말했다.

자인과 네그로폰테의 방식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네그로폰테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루퍼트 머독과 손잡고 다보스에서 ‘어린이 한 명당 랩톱 한 대(OLPC)’ 운동을 홍보했다. OLPC는 가난한 시골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프로그램이다. 네그로폰테의 XO 랩톱은 그 나름대로 정말 혁신적이다.

고장이 잘 나고 과열되기 쉬운 움직이는 부품을 없앴다(회전하는 하드디스크 대신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다). 전력 소비가 아주 적어 자동차 배터리로 몇 시간 동안 작동되며 급할 때는 손으로 충전해도 된다. 각 PC를 중계기로 활용해 네트워크를 계속 넓혀가는 ‘메시 네트워킹(mesh networking)’ 기술을 이용해 인터넷 연결을 확대한다.

그러나 XO에는 도움이 필요하다. 네그로폰테는 2008년 말까지 100달러 선에 맞추겠다고 약속하지만, 지금은 부품에 보조금 지원을 받으면서도 한 대 가격이 약 140달러다. 예컨대 AMD의 칩과 치린 테크놀로지(奇菱科技)의 모니터를 일반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납품 받는다. 따라서 OLPC는 돈 많은 거래처의 호의에 의존하며 성능에 관한 평판도 썩 좋지 않다.

적어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쟁자들의 반응은 그렇다. MS의 빌 게이츠는 성능이 떨어지는 구식 PC라고 평가절하했으며 인텔 중역들은 ‘100달러짜리 장치’라고 부른다.

노바티움은 컴퓨터의 설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방식을 택했다. 최고급 PC의 전형적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였다. 일단 설치하면 기존 PC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케이스에 키보드와 모니터가 달린 모습이다. 설치와 작동 방법은 TV처럼 간단하다.

콘센트를 꽂고 전원을 켜면 된다. 그리고 정부 예산이나 자선단체의 기부를 받지 않고, 자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모델이 자금원이다. “봉사활동보다 먼저 수익을 내야 한다”고 노바티움의 알록 싱 최고경영자는 말했다. 커민스 오토 서비시스사에서 쌓은 신제품 출시 경험을 인정받아 영입됐다.

네그로폰테는 노바티움의 방식에 비판적이다. 우선 이용자 대상이 거주하는 시골 지역에 변변한 네트워크가 없다는 주장이다. PC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XO 방식이 인도의 상황에 더 적합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노바티움의] 경량 클라이언트 방식은 빈국이나 개도국에 적합지 않다.

종량제 지불방식으로 이어지며,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광대역 네트워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e-메일에서 밝혔다. “버스와 자전거의 경우와 다소 비슷하다. 매일 사용하는 데는 한번 구입하면 더 이상 돈이 안 드는 자전거가 적합하다.”

노바티움 팀도 물러서지 않는다. 네그로폰테는 시골의 극빈층 농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들의 표적 고객은 다르다. 먼저 도시 중산층을 겨냥해 수익을 올릴 생각이다. 도시 중산층의 많은 사람이 PC를 살 만한 경제력은 없지만 케이블과 통신망은 언제든 쉽게 이용 가능하다.

자인은 ‘피라미드 밑바닥의 행운(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Eradicating Poverty Through Profits)’의 저자인 미시간대 경영전문가 C K 프라할라드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도의 PC 시장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비교적 부유한 인도인 1000만 명은 컴퓨터 구입행태가 선진국의 소비자들과 똑같다고 자인은 말했다.

그 밖에 ‘피라미드 중간층’에 도시인 3000만 명, 그리고 ‘피라미드 밑바닥’에 극빈층 1억 명이 있다. “인도인들이 컴퓨터를 처음 구입하는 수준을 크게 낮춰 피라미드의 중간층도 이용하도록 만들자는 얘기”라고 그는 말했다. “그게 핵심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바티움은 인도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운영하는 망을 따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려면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판매하는 통신이나 케이블 회사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몇몇 소규모 케이블 회사와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에 성공하면 에어텔·해스웨이·시피·타타 인디컴, 그리고 국유회사 BSNL·MTNL 같은 대형 광대역 회사들과도 계약하기 쉽다). 노바티움이 성공하면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와이스 같은 서구 경쟁사들이 나타날 전망이다. 와이스는 이미 인도의 IT 기업에 네트워크 PC를 판매한다.

그러나 와이스 등의 회사들은 아직 가정용 시장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노바티움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기업과 교육 시장 대상의 기술사용 허가를 내주고 자신들은 가정용 시장 판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 같은 선발업체의 이점에 풍부한 기능(가령 스트리밍 동영상, 주문형 비디오, 그리고 다른 저가 경량 클라이언트 PC에는 없는 인터넷전화)을 제공하면 최소 몇 년간은 우위를 점하리라고 자인은 기대한다.

자인은 앞으로 언젠가 자신의 장치가 컴퓨터 환경을 바꾸리라고 전망한다. “전 세계 컴퓨터 보유자 수가 7억 명에 이르는 데 4반세기가 걸렸다”고 그는 말했다. “하드웨어 종량제 판매 모델과 네트워크 컴퓨팅 모델의 영향으로 5년 뒤에는 그 수가 배로 늘어날지 모른다.

델·HP·레노보·인텔·MS 외에 기존 컴퓨터 연관산업 전체에 막대한 기회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존 사업 모델을 개혁해야 한다. 사업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인도를 주목해야 한다.

With JESSICA BENNETT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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