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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샌드위치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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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자동차? 앞으로 5년 안에 따라잡을 것이다."

중국 상용차 시장 1위 업체인 베이징푸톈자동차(北京福田汽車) 셰쯔칭(子淸) 부원장의 장담이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 만난 그는 "BMW.벤츠.도요타 같은 세계적 브랜드는 힘들겠지만 한국 차는 품질만 따라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이 최첨단 LCD 패널 공장을 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한테 달렸다."

일본의 첨단 기술 기업 알박(Ulvac)의 우스미 다카유키(臼見隆行) 경영기획실 부장의 지적이다. LCD 패널 핵심 기술인 성막(成膜)장치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96%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자부심이 잔뜩 담겨 있다.

외환위기 발생 10주년, 노무현 정부 출범 4주년을 맞은 한국 경제의 현주소가 답답하다. 기업 팔고 금붙이까지 내다 팔아 국가 부도 위기는 넘겼지만 앞으로 10년, 2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이에 이웃 중국에 바짝 쫓기고 일본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특히 중국.일본과는 주력 산업이 비슷해 세계 시장에서 3국간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사에서 "이젠 한국이 동북아 시대의 중심 국가로 가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 '중심 국가' 대신 '샌드위치 신세'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추격은 무서울 정도다. 저비용을 무기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했던 중국이 기술로 무장하면서 자동차.철강 등 핵심 제조업 분야는 물론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이동통신장비의 기술 격차는 2005년 현재 1년. 2010년이면 6개월로 좁혀진다. 3.5년 정도인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분야의 기술 격차는 2010년까지 1.7년으로 줄어든다." 최근 본지가 입수한 '중국의 부상 및 동북아 분업 구조 변화에 따른 우리의 대응 전략' 보고서 가운데 일부다. 이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외경제연구원(KIET) 등이 지난해 말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내용이다.

지난해 10년 불황을 벗어난 일본 역시 힘차게 뛰고 있다. 지난 회기(2006년 4월~2007년 3월) 일본 기업들의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21.3%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6.8%(산업자원부, 200대 기업 설비투자 조사)이며, 올해는 이보다 낮을 전망인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투자 부진에 노사 불안까지 겹치면서 한.일 양국 간의 생산성 격차도 다시 벌어지고 있다. 양국 간 노동생산성 격차는 1995년 시간당 29.3달러에서 2005년 29.9달러로 확대됐다. 여기에 엔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엔저(低)까지 가세하면서 자동차.가전 등 주력 분야에서 한국 제품보다 가격이 싼 일본 제품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샌드위치 현상은 비단 경제 분야만의 고민이 아니다. 외교 안보와 국방, 교육은 물론 문화 부문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비교 우위를 급속히 잠식당하면서 중국과 일본에 밀리는 경향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국가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한국경제연구원 노성태 원장의 지적에 전문가.기업인 모두 동의하고 있다.

◆샌드위치 코리아=고효율의 일본과 저비용의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꼼짝 못하게 돼 가는 한국의 현실을 담은 표현.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상황을 샌드위치에 비유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별취재팀 = 양선희(팀장).이현상.권혁주.김창우(이상 경제부문)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biz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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