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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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사퇴의사 표명에는 고대 교우회(총동문회)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이 총장이 제안한 신임투표 뒤 학내 혼란이 더 격화되자 고우회보(高友.동창회보)를 통해 이 총장의 책임을 묻고 나선 것이다.

교우회는 그동안 침묵을 지켜 왔다. 하지만 '사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이 총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교우회는 여느 대학 동문회보다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해 왔다. 24만 명의 동문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현재 회장은 박종구 삼구 회장이 맡고 있다.

교우회는 이전에도 학내 의견이 갈려 혼란을 겪을 때마다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1989년 이준범 총장의 연임 논란, 2002년 김정배 총장의 세금대납 의혹, 2005년 인촌동상 철거 갈등 등 고대 내부 혼란이 있을 때에도 교우회가 나서 학내 여론을 주도했다. 당시 이 전 총장과 김 전 총장은 교우회의 사퇴 권유 성명서가 나오자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고우회보 사설 요약=이필상 총장이 표절의혹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 제안한 전자투표를 강행했다. 재적인원 과반수 출석,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이 가장 일반적인 기준임을 감안할 때 39.2%만이 투표에 참가한 것은 '사실상 불신임'이다. 이를 '과반수 신임'으로 해석하는 이 총장 측의 아전인수격 투표 결과 해석은 폭발 직전 여론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신임투표 건은 장고 끝의 악수였다.

이 총장은 물론이고 전체 고대 사회가 입은 상처가 만신창이라고 할 만큼 깊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장이 대내외적으로 총장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총장에 대한) 교수와 직원, 그리고 학생들의 존경은커녕 조직의 장(長)으로서의 영(令)도 제대로 서지 않을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대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냉철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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