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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오락가락 '출총제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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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합의라고요. 누가 (출자총액제한제를) 합의했습니까. 강봉균 전 의장이 한 거지 우리는 합의한 적 없습니다."(열린우리당 A의원) 그는"순환출자까지 전면 금지해야 한다"며 한술 더 떴다.

"아직도 출총제를 고집하는 게 말이 됩니까."(한나라당 B의원) 그는 투자를 부추기기 위해 아예 출총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 C의원은 "출총제는 없애되 순환출자는 단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일 국회 정무위원들은 지난해 말 당정합의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출총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정부는 당정 협의를 거쳐 6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출총제 대상 기업의 출자한도를 완화(순자산의 25→40%)하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탈당 정국으로 법 통과는 미궁에 빠졌다. 지난주 여당의 채수찬 의원 등 14명이 출총제를 폐지하되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하는 새 법안을 제출했다. 기존 순환출자도 매년 10%씩 의결권을 축소하는 조건을 덧붙였다. 이렇게 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무려 13개. 이에 더해 천정배 의원 등 탈당파 9명이 "환상형 및 비환상형 순환출자를 규제해야 한다"며 또 하나의 강경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활발한 토론과 심의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하지만 언제까지 출총제 논란만 벌일 것인지 궁금하다. 출총제는 지난 20여 년간 도입→폐지→부활→예외 적용을 거치며 이미 누더기가 됐다. 정치권만 탓할 일도 아니다. 공정위도 툭하면 대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출총제를 휘둘러 왔다. '경제력 집중 견제'라는 근사한 명분은 빛바랜 지 오래다.

출총제는 이번 임시국회가 분수령이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당장 4월 15일 대기업 집단 지정 때 현행 제도가 적용된다. 한 10대 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정책의 불확실성"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정리한 사항까지 뒤뚱거리는 판이니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올해는 출총제 대상에서 당연히 빠질 것으로 알고 경영계획을 짠 기업들도 당황하는 눈치다. 정치권에서 출총제의 낡은 레코드판이 다시 돌아가면서 어디 기업들만 죽을 맛이겠는가.

이날 통계청은 1월 신규 취업자가 정부 목표인 30만 명에 못미치는 25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어쩌면 일자리를 잡지 못한 실업자 85만 명(1월 기준)이 진짜 피해자가 아닐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