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자세론 물가 못잡는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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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동안 잠잠하던 물가가 8월중에 또 한차례 껑충 뛰었다. 연말을 넉달 앞둔 지금까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를 넘어 한자리수 물가억제선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8월중의 소비자물가 앙등은 주로 휴가철의 수송난과 태풍으로 인한 농축수산물가격의 뜀박질이 주도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를 두고 정부는 구조적인 요인보다 일시적인 요인들이 빚어낸 일과성 현상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즉 8월의 물가상승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잘못보다는 하느님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다는 식의 설명이다.
물가문제를 이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편하게 지나쳐 버리는 태도가 남아 있는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철의 수송난과 태풍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해마다 겪어왔고 금년도 물가상승 내용의 상당부분을 점한다는 농축수산물의 가격불안도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축수산물의 수요와 공급은 원래 단기적으로 불균형을 이룰 수 밖에 없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치밀하고 책임감있는 물가당국이라면 연연세세 경험해온 일시적·계절적 물가불안요인들을 함께 고려한 연중물가관리계획을 세우고 예상밖의 불가항력적인 물가상승 부분을 다른 부분의 안정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대책을 미리 짜놓아야 마땅하다.
정부는 「기상여건의 호조」등에 힘입어 9월 물가가 정상수준을 회복하고 연말까지 한자리수 물가상승억제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이 전망이 현실로 적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와 함께 정부가 총력 대처하겠다고 약속한 추석물가관리도 제발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을 기대한다.
여기서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품목별·시기별로 불안요인이 나타날 때마다 이를 국부적으로 다스리려는 이른바 미시적 물가관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거시적·구조적 대응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가급적 줄이고 효율화하는 처방이 현재보다 더 높은 강도로 제시되고 실천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되는 일로 이미 정부는 건설경기의 과열진정과 국민들의 사치성 소비억제 등 몇가지 대책을 산발적으로 내놓았지만 이를 더욱 확충하고 체계화한 총수요 억제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는한 우리사회 전체의 해픈 씀씀이를 잠재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가까스로 10%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물가상승을 막는다고 해도 그것이 곧 물가정책의 성공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지출의 빠른 증가가 인플레를 낳는 것이 사실이지만 역으로 계속되는 물가상승이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효과도 엄청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물가불안으로 우리사회에는 이미 과소비­인플레­과소비의 악순환이 자리잡기 시작한 징후마저 엿보인다. 소득이 높아지고 물가가 올라가는데 지출이 빨리 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바로 이런 현실은 이에 대처하는 물가당국의 안이함을 더 한층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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