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의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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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구는 일본이 조선을 침범하기 위해 그 첫발을 내디딘 l8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몰락 양반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신성분의 한을 풀기 위해 진사가 되려는 야망을 가지나 곧 그만두고 관상·지관공부로 소일하다 동학의 접주가 된다. 싸움에서 패해 안중근의사의 본가에서 숨어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배우고 여러 지방을 주유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민족의식이 성장하여 충동적으로 일본군 장교를 죽인다. 이민족이 황후롤 시해한 것을 복수하기 위함이나 이 사건으로 그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곧 탈출하여 떠돌아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교사가 된다. 이후 안악사건, 신민회사건등에 연루되어 또다시 감옥살이를 한다.
19l9년 만세운동 식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가담한다. 임시정부 내에서 경무총장·내무총장·국무령등을 거쳐 1944년 주석이 된다.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임시정부의 침체를 벗어나기 외해 테러를 도모하기도 하며, 광복군을 조직해 독립을 위한 군사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그는 조국의 광복을 민족의 손으로 이룩해야한다고 생각한 민족주의자였다. 해방된 조국의 소식을 접하고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던 것도 신식민지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그러한 사상을 싫어했던 일부세력에 의해 쓰러졌다. 그러나 남한의 민족주의 정치사상의 많은 부분이 그의 영향을 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백범일지』는 처음 기록할 때는 상·하 두편의 필사본이었으나 해방후 합본하여 출관됐다. 그리고 출판 당시 어려운 한문투를 쉬운 국문투로 옮겨놓았다. 상편은 아들에게 남긴 유서며, 하편은 해외동포에게 남긴 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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