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똑같이 소중한 외국 근로자 인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는 재론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 경시 풍조에 경종이 울린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반짝 관심이나 립서비스로 그칠 일이 아니다. 4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이며 우리 산업의 한 축을 지탱하는 주요 구성원들이다. 특히 한국 근로자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나 영세 사업장들은 제3세계 근로자들이 없으면 회사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른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만성적인 임금 체불은 말할 것도 없고 야만적 폭력과 원시적 산업재해, 노골적인 멸시나 성적 희롱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특히 불법체류자에 대한 악덕 고용주의 착취와 학대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인 게 사실이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18만6000여 명(2006년)이나 된다. 싼값에 숙련공을 고용할 수 있는 까닭에 한국 사업주들이 공공연히 불법체류자들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는 엄연한 탈법 행위인 만큼 철저히 단속돼야 한다. 온정주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법체류자라 해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불법체류자를 무한정 붙잡아 둘 수도 있게 한 법규는 명백한 인권 유린 조항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근무처 변경을 세 차례로 제한하고 이때 두 달 내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하는 것 역시 불법체류자를 양산해낼 가능성이 있는 조항들이다.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법규는 고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가짐이다. 외국인 근로자도 똑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그들에게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노동권과 인권을 인정해야 한다.